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너무 힘이 들었는지 어깨가 축 늘어지고 다리도 후들거린다.
목을 좌우 아래위로 돌리고 허리를 폈다.
하늘을 보았지만 맑았는지 흐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남편은 이럴 줄 알았나 보다.
어제 집을 나서는데 "무거운 것 들지 말고 너무 일 많이 하지 말라"라고 하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이번이 마지막 이사가 될 테니 처형이 몸도 불편하고 연세가 있으니 힘들겠지만 당신이 마무리까지 다 해주고 오라"라고 하면 남편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고맙겠냐.
어린이가 숙제를 다 하지 못하고 찝찝한 마음을 가지듯이 나의 생활도 그랬다.
형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들 하나 금쪽같이 키웠는데 고생 않고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조카.
사업 자금 대어주고 손자들 공부시키느라 고생만 한 언니가 늘 아픈 손가락 같았다.
긍정적인 성격이라 고생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일도 즐겁게 했지만 그런 언니가 마음에 걸리고 괴로웠다.
좋은 옷을 사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멋진 차를 사도 무엇을 하던 언니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할 때는 그냥 미안했다.
지나치게 언니 일에 신경을 쓴다고 남편과 언짢은 일도 많았지만 남다른 우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명처럼 얽혀있었다.
차라리 나쁜 사람이었으면 덜 신경을 쓸 텐데 오래 식당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순수하고 착한 언니니까 더 짠하다.
집을 마련할 때부터 지금까지 남편 눈치 보며 모자라는 돈 맞춰 주고 집수리, 가구, 이사까지 이제 끝났다.
부동산 폭등 직전 마지막 열차에 타지 못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3년 동안 언니와 자주 보고 매일 전화하고 쇼핑하고 맛있는 음식 함께 먹는 등 좋은 일이 있었지만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 자식들이 노부모님과 이웃해서 사는 심정이 이럴 것이란 생각을 가끔 했다.
전통 기역 자 한옥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하고 나니 전통 한옥도 조금만 편리하게 보완하면 흙을 밟으며 사는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거란 말을 했는데 언니 집이 그렇다.
편리함만 찾다 보니 아파트를 선호했는데 의외로 한옥의 장점이 많은 걸 요즘 느낀다.
한옥의 단점 중의 하나인 냉난방은 성능 좋은 단열재와 두터운 로이 새시로 해결되었고 크기가 작은 방을 한 칸을 줄여서 거실과 주방을 겸하고 좁았던 주방을 목욕탕으로 개조하니 모든 게 해결되었다.
밝고 통풍도 잘 된다.
밖에 있는 화장실을 없애고 창고로 쓰니 잡동사니를 정리하는 것도 편하다. 창고 위의 작은 옥상에는 큰 장독도 있고 아직껏 피어있는 맨드라미가 겨울을 맞을 것 같다.
거실에서 파란 하늘에 구름처럼 떠 있는 옥상을 바라보는 기쁨도 있다.
두류공원에서 하는 불꽃놀이를 옥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고 밤이면 우뚝 솟은 두류 전망대의 화려한 불빛도 볼 것이다.
아이들이 뛰놀던 향수를 불러오는 좁은 골목길도 정겹다.
봄이 오면 마당 한 편의 제법 큰 모란은 탐스러운 꽃을 피울 것이다.
언니는 꽃에 얼굴을 묻고 사진을 찍을 것이고 원래 미인이었지만 나이 들어도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언니는 행복하리라.
언니는 꼭 행복해야 한다.
이젠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편하고 여유롭게 잘 살기를 간절히 빈다.
존경하는 죽도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모셔옮.
한 번도 달마도에 관심이 없었는데
죽도 선생님의 양각 작품을 보는 순간
선생님의 인품이 그대로 스며있는 느낌 찐하게 받았다.
좋은 기운은 주고
나쁜 액운을 막아내어
복과 재물과
건강을 지켜 준다는 달마
사랑하는 언니에게 바치고 싶은 마음으로 허락 없이 모셔왔는데
무례함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니면 지우라고 하시면 지울게요,
죽도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