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얻은 외손녀는 유일한 핏줄이다.
누구에게나 귀하지 않은 손주가 있겠냐만 온 가족이 손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사는 관계로 일 년에 몇 번 보는 기회가 있을 뿐이니 가까이서 자주 보고 생활하는 사람보다 친화력이 덜한 편이다. 그래도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키는 얼마나 자랐나, 날씬하고 예쁘게 자라는지, 먹는 투정은 않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어린이 집 생활은 잘하나, 엄마만 좋아라 껌딱지처럼 붙어서 딸을 너무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오늘은 또 어떤 별 다른 일이 있었는지 늘 궁금하다.
딸과 통화도 손녀가 어린이 집에 있는 동안에 하게 되는데 가끔 손녀랑 함께 있을 때 하게 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을 뺏는 사람에게는 호의적이지 않다.
인사를 시켜도 그냥 형식적이고 통화를 빨리 끝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엿보인다.
원이에게 잘못 보이겠다, 이제 그만 끊자.
서둘러 전화를 끊고 나면 걱정이 된다.
혼자 자라니 엄마에게 너무 애착인지 집착인지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을 주질 않는다. 엄마와 둘이 놀 때는 노골적으로 아빠조차 근접을 싫어하니 문제다.
딸에게 이제는 혼자 놀게도 하라고 조언을 하면 혼자 있을 때는 슬퍼 보인다고 한다. 껴안고 일일이 대답하고 놀아주는 딸을 보니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자식 바보가 되는구나 느낀다.
부모 없이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짠해진다.
사회가 보듬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조기 교육이 일상화되고 우리 나이 또래가 할머니가 되었을 당시 모임에 가면 집집마다 천재가 있었다.
자신이 공부할 때의 초, 중학생 실력의 언어 능력을 손자, 손녀가 조리 있게 구사를 하고 겁 없이 영어 단어를 원주민 발음으로 소리를 내니 천재라 생각했을 수 있었겠다. 우스웠던 일은 제일 먼저 손자를 본 친구는 모 기관에 가서 천재인지 검사를 받은 일도 있었다. 나중에는 너도 나도 손자 손녀가 천재는 아니지만 하여튼 놀랍다는 데는 공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찍 손자를 보아서 초, 중학교를 다니는데 늦게 얻은 나는 손녀가 궁금했다.
천재는 아닐 것 같지만 어떤 부문에 소질이 있고 무얼 좋아하는지 딸에게 가끔 물어본다.
아직은 아기 같은데 조리 있고 상황에 맞게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원이는 할아버지보다 더 말을 잘하는 것 같아."
딸에게 별나게 애를 키운다고 잔소리를 몇 번 했지만 엄마와 끝없이 소통하고 눈을 맞추고 공감을 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손녀는 어딜 가나 엄마를 독차지한다.
컴퓨터에 앉아있는데 손녀는 거실에서 엄마랑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웃음소리가 나고 화기애애하더니 얼마 지나 손녀의 억지 부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딸은 좋은 말로 양보와 설득으로 상처를 주지 않고 해결하려 애를 태우고 있었다.
계속 듣고 있으려니 답답하기도 하고 계속되고 있으니 화가 났다.
딸이 상처받을까 봐 대신 놀아주려고 나갔는데 손녀는 눈물까지 흘리며 놀이에 졌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엇을 하던 남보다 잘하고 싶고 게임도 항상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게임을 할 때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데 받아들여야 함을 조곤조곤 얘기를 하며 달랬다. 그래도 전혀 효과도 없고 더 울기 시작했다.
이런 억지를 처음 본다.
목소리를 높여 야단을 쳤다. 옆에서 딸은 엄마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으니 걱정은 하면서도 요즘은 아이들 윽박지르지 않고 조용히 달래고 진정되면 이해를 시킨다며 엄마의 이해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목소리가 작아진다.
무슨 소리를 하노?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자식 너무 제 주장대로 키우는 건 아니다. 아기일 때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어도 저렇게 말 다 알아듣고 표현도 다 하는데 옳고 그름은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
제멋대로 키우는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죽을까 봐 그런다는데 크면 괜찮아질 거란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랑이 깃든 엄함은 절대 기가 죽을 리가 없다.
어릴 때 좋은 품성 길러주면 평생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예우 받으며 살 텐데 아깝다고 그냥 제멋대로 키우면 평생 홀대받으며 무시당하고 산다.
주위에서 사랑받으며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잖아.
자식 잘못 키우면 너도 혼나야 된다고 아까운 딸에게도 호통을 쳤다.
마음이 편하지를 않으니 밤에는 계속 꿈을 꾸게 되었다.
며칠 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러고 보니 원이가 제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하니 너무 아기 같아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원이가 제일 모범생이고 선생님을 제일 많이 도와준다는 말에 만족하고 있었나 봐요."
"이제 잘못된 생각을 하면 가끔 야단도 쳐요."
엄마 체면 살려주려는 딸의 깊은 마음이 애틋하다. 나 역시 딸바보 엄마다.
"나리야 원이가 할머니 미워하면 어떡하니, 6년 인생 최대의 무서운 경험 아니었겠어."
"엄마, 걱정 마세요. 원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엄마니까 괜찮아요."
"원이야 할아버지께 인사드려."
뛰어오더니 얼굴만 쏙 내 밀고 사라졌다.
"할머니께도 인사드려야지."
화면에 나타나더니 씩 웃음 주고 사라졌다.
쿨하게~~
원이 엄마 아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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