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과 눈썹 사이 세로로 주름이 잡힌 사람들을 보면 불만이 많아 자주 찡그려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햇살 밝은 곳에서 거울을 봤더니 나의 미간에도 주름이 잡혀있었다.
그것도 원상 복구 불가능한 선이 잡힌 주름이.
잘 보이지 않는 글씨나 물체를 무리해서 보는 습관이 낳은 결과라는 자체 진단을 내렸다.
어느 비 오는 날 고속도로에서 야간 운전을 하는데 앞에 달리는 차량 번호가 흩어져 보였다.
옆에 앉은 언니에게 앞 차 차량번호의 상태를 물으니 똑똑하게 잘 보인다고 했다.
그 후부터 그렇게 좋아하던 운전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순간의 실수가 너무 크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좋은 인상은 본인 책임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찡그리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글자를 보았더니 완전히 흐려서 잘 보이 지를 않는다.
안과에 들렸더니 노안이라고 한다.
충격이다.
할 수 없이 돋보기안경을 쓰게 되었는데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았다.
60대 초반에는 좌우 시력이 1.2 1.5였는데 너무 방심했는 것 같다.
주위 아는 친구나 지인들은 나이 듦에 오는 주름이나 피부 노화에 슬퍼했다.
미용 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망설이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볼 때는 그들의 얼굴은 그냥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움이 좋아 보여서 내 눈에는 다 이쁜데, 그러면 그들은 아니라며 우울해한다. 사실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햇살이 깊이 드는 거실에서 돋보기를 끼고 거울을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한 화장이 얼굴에 골고루 잘 되었나 확인하는 중에 너무 놀라고 말았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화장을 했을 때 파운데이션이 덕지덕지 묻어있으면 보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확인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마는 가로로 여러 줄이 그어져 있고 눈꼬리도 선명하게 주름이 지고 더욱 놀라운 건 윗입술 가장자리가 세로로 미세한 잔주름이 있고 아랫입술 양 끝의 아래는 가로 세로 주름이 있는 게 아닌가.
지금껏 안경을 쓰지 않은 체 얼굴을 보았을 때는 그냥 곱게 나이 들어가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하면 그냥 괜찮다고 위로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TV를 볼 때 쓰는 안경과 글씨를 볼 때 쓰는 안경을 갖추었다.
컴퓨터나 휴대폰을 볼 때는 찡그리지 않아도 된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할 때는 그냥 안경을 사용하지만 세심하게 손질을 해야 할 때는 도수가 있는 돋보기안경을 사용한다. 혹여 잔여물이나 머리카락이라도 나올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욕조나 세면기 집안 구석진 곳들도 가끔 안경의 도움을 받아 점검을 한다.
가지 친 화분에 새싹이 나오는지, 봄꽃의 꽃망울이 맺어졌는지, 씨 뿌린 상추와 치커리의 싹이 나오는지 두 종류의 안경으로 번갈아 가면서 관찰할 때는 애간장을 태우지만 재미가 쏠쏠하다.
기다리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마트에 갈 때도 안경 지참은 필수다.
자그마하게 적힌 가격과 용량과 유효기간 신선도를 보기 위해서지만 원하지 않는 비싼 유기농을 샀을 때의 억울함(?)도 겪었기 때문이다.
안경이 나의 생활 깊숙하게 들어와서 많은 이로움과 기쁨을 주는 것이 고맙다.
그러나 꼭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안경을 끼지 않으려고 한다.
노안으로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아름답기도 하고 행복한 일이 아직은 너무 많은 걸 알기 때문이다.

처음 돋보기를 쓰고 관찰한 영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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