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로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남편 흉을 보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린 나
다른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을 죽이고 나이 들면 보자면서 다짐과 위로를 하며 흥분할 때 이상하게 보였는데......
단 둘이서 살며 24시간의 일상을 거의 공유하게 되니 좋은 것보다 흠잡을 것이 더 많다.
남편은 나름대로 수십 년을 직장생활에 충실했고 나는 가정과 육아에 열정을 다했다.
당시의 직장생활이란 게 가정보다 우선으로 집은 잠자는 공간이었고 가족 모두 불만 없이 그런 줄로만 알았다.
우리 또래의 나이 전후를 살아온 이들의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살아온 시대적 환경의 산유물이라 할 수도 있겠다.
삼식 세끼의 독박, 플러스알파에 무너지는 아내의 인격.
요즈음 불어닥친 트로트 열풍은 시간에 관계없이 TV를 켜면 나온다.
젊음과 노래, 다양한 퍼포먼스와 스토리를 갖고 무장한 그들에게 빠진 남녀노소들은 코로나로 집콕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르나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어쨌든 대세다.
미스트 트로트 선발 예선에 나온 후보 중에 얼굴에 복면을 하고 '삼식 색끼'라는 예명을 하고 나온 가수가 있었다.
하루 세끼라고 이해하는 남편들이 꽤 있었을 거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기를 원하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꼬집어 말한다는 걸 여자들은 단번에 안다.
이렇게 예명 하나에도 남녀 간에 이해가 다르니 종일 붙어있는 퇴직 후 부부들에겐 졸혼이란 말이 불쑥불쑥 시도 때도 없이 나온다.
다음에 만약 새로 태어날 수 있다면 절대로 여자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를 다짐해 보지만 그럴 일도 없을 것이고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 할 일을 정리해 보니 역시 세끼 먹을 메뉴가 제일 큰 일이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목욕탕 뒷정리, 창문 열고 물 마시고 화분들과 눈인사, 옥상에 심어둔 야채들 살펴보고, TV 켜서 코로나 19 정보 확인. 아침 먹고 설거지, 베란다 물청소 집안 청소, 목욕탕 청소, 샤워, 머리손질, 세탁물 돌리며 점심준비, 식후 설거지, 커피 한잔. 빨래 널기, 컴퓨터 게임과 기사 둘러보기, 과일 간식 먹으며 남편과 대화, 전화로 팬 관리, 저녁 준비, 식사 및 설거지, 연속극 시청하며 저녁 간식......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적으면 수십 가지 손이 간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생략하지만 대체로 매일 반복이다.
남편이 하는 일이라곤 꼼꼼하게 분리해 둔 쓰레기 버리기, 커피 타기, 옥상 야채 물 주기가 화장실 휴지 보충이 전부다.
가끔 울컥할 때가 있어 무엇이든 시켜보고 싶지만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내가 하는 게 화가 덜 난다.
그런데 정말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은 따로 있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서 모으는 것이고 필요 없는 것을 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모자, 가방, 안경, 시계, 신발, 옷 등등. 엄청난 개수와 종류가 만물상이 따로 없고 수납할 수 있는 곳의 대부분을 남편이 사용하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색상이나 디자인이 거의 비슷비슷해서 별로 구별도 가지 않는 물건들을 볼 때는 한숨만 나와서 가능한 보지 않으려고 한다.
아까워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재활용 보관함에 가져다 두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으니 나눔이 되고,
둘이 나이가 들어 아프든지 힘이 없으면 치울 수도 없다며 어르고 달래도 안된다.
심할 때는 "나도 갖다 버리면 되겠네 " 버럭 화를 낸다.
이쯤 되면 뒷담화로 화를 풀 수밖에 없다.
딸에게 사실을 얘기하니 엄마의 속상함에 공감하며 위로를 하면서도 아빠는 쇼핑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시는 게 아닐까요? " 살짝 아빠를 이해해 드리자는 사인을 보낸다.
언니한테 하소연 하면 "그래도 순하고 착하잖아." 성질난 동생을 달래려 하지만 "난 그런 것 필요 없다. 마지막 남은 인생 맑은 정신이 있을 때까지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예쁘게 신혼처럼 살고 싶은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며 분해한다.
언니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아내가 너무 속상해서 남편을 비난하는 내용인데 그중에 마지막 부분이 '남편은 내 인생의 로또야.' 소리친다.
실컷 비난을 하고 나니 화가 풀려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완전 반전에 눈물 쏙 빼며 울고 웃었다.
"남편은 내 인생의 로또야, 안 맞아, 너무 안 맞아, 정말 안 맞아, 하~나도 안 맞아."
요즈음 특별히 재미나는 드라마가 없는데 SBS '편의점 샛별이'를 보게 되었다.
웹툰 원작을 방송 드라마로 재탄생한 작품들이 대체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극 중에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의 등에 업히는 장면이 나왔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앉아 있는 남편 등에 엎드려 업어보라고 했다. 일어서지 못하는 남편을 두고 의자 위로 올라가서 다시 업어보라고 했다. 이것쯤이야. 벌떡 일어서며 으스대는 것 같았다.
키만 크고 약한 체격에 혹여 허리를 다칠까 봐 걱정되어서 빨리 내려왔다.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잘못한 일보다 잘해준 일들이 얼마나 많았나.
남은 인생 서로에게 '내 인생 최고의 로또가 당신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수양하는 마음으로 진심 노력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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