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저녁을 먹고 나섰다.
낮에는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지만 밤공기는 성큼 가을이다.
어둠이 내리는 하늘을 보니 쏴하고 차갑고 높아 보인다.
옷은 편하게 입었다.
예전 같으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양을 갖추고
장소에 어울리도록 애를 썼겠지만 이제는 그냥 편한 게 좋다.
문희순!
내가 유일하게 부러워하는 여인이다.
물욕은 없지만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다 보니 가끔은 까다로울 때가 있다.
체면도 없이 그녀에 대한 부러움을 나열해 보면 너무 많다.
똑똑하다.
어떠한 곳이나 상황에서도 자기의 의사를 분명하고 조리 있고 간결하게 표현을 한다.
늘 책을 가까이하고 최소한 3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 같다.
예쁘다.
70년대 가장 예쁜 스타 문희보다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검소하여 평소에는 수수하게 다니지만 꼭 격을 갖추어야 할 때는 한껏 멋을 부릴 줄 안다.
경제력이 여유로워서 하고 싶은 일은 마음껏 할 수가 있다.
정직하다.
세금을 너무 많이 내는 것 아니냐고 세무서 직원이 물어본다고 한다.
같은 직종의 다른 사람과 차이가 많아 입장이 곤란하다고......
현명하다.
많은 형제의 맏며느리로서 베풀고 경우에 맞는 처신을 잘한다.
아들 둘을 잘 키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종에 종사한다.
부지런하다.
젊어서는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고(남편 병원 사무장)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고전무용을 배워서 해외 공연까지 다니는 실력을 갖추었다.
음식 솜씨 등 많은 게 있지만 이 중에서 똑똑하고 예쁘다는 게 가장 부럽다.
그렇지만 여성스럽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면은 내가 낫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 다른 사람 다 있는 딸이 없잖아! " 가끔 놀려주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큰일이다. 노후에는 딸이 있어야 한다는데.." 너스레를 떠는 여유도 보기 좋다.
나의 부러움의 대상인 그녀가 며칠 전 연락이 왔다.
봉산 문화원에서 가을을 여는 [빛으로 그리다 /논개 ] 공연이 있다고 초대를 했다.
오랜만에 강훈이 상원이 엄마랑 함께 갔다.
춤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지만 한국의 고전 무용은 서양의 발레보다 더 친근감이 간다.
발레는 다리를 주로 사용하며 하체에 중점을 두는 춤이지만
고전 무용은 손과 팔 어깨를 움직이는 상체에 중점을 둔다는......
가장 기억에 남는 태평무는 한국을 대표하고 세계가 인정한 중요 무형문화재다.
특이한 발짓 동작, 우아하고 섬세하고 절도 있는 손놀림~
민속 음악의 가락과 장단이 어우러져 독특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왕비 복장을 한 그녀의 모습은 우아하고 품위 있어 천상 왕비다.
돋보이는 오뚝한 콧날의 옆모습은 더욱 아름다웠다.
그 외도 여러 작품이 있었고 무용극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춤을 전공한 젊은 무용수들에 뒤지지 않는 실력과 열정~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여인이다.
충분히 부러워할 가치를 또 느낀다.
나태하고 무기력한 자신의 모자람에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한번 태어난 인생인데......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자는 듯 눈을 감았다.
빛을 그리다/논개
글/눈님
빛 푸른 진주 남강 역사는 흘러간다
을야에 우는 물새 가신 임 그리누나
그윽한 향기 지닌 조선의 의인이여
리스에 뿌리내린 상록수 그대인가
다시 또 환생하면 새되어 날으소서
리스;바위틈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