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 제조기/장효조
글/눈님
안정된 타구 자세 선구안 기를 모아
타격의 교과서적 모범을 보인 천재
제격의 야구 발전 일선서 힘썼으나
조기에 가신 임아 애닲다 어이하나
기념적 타율 기록 야구계 전설 되리
'타격천재' 장효조가 남긴 불멸의 기록들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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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9.08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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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감독은 위암과 간암으로 한 달간 투병 생활을 하다 지난 7일 영면했다. 지난 7월23일 30주년 레전드 올스타전에만 하더라도 정정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인사했던 장 감독이기에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었고 모두가 애달파했다. 현역 시절 장 감독은 '방망이를 거꾸로 들어도 3할 타자'라는 소리를 들은 최초의 선수였다. 그는 정확히 10년간 프로야구 선수로 뛰었고 이 기간 동안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들을 남겼다.
▲ 통산 타율 0.331

▲ 타격왕 3연패
장효조는 1983년 첫 해부터 3할6푼9리라는 고타율로 수위타자에 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7세.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지만, 데뷔 첫 해부터 타격왕에 오른 건 그와 1993년 삼성 양준혁밖에 없다. 이후 장효조는 1985년(0.373)·1986년(0.329)·1987년(0.387)까지 3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했다. 빙그레 이정훈이 1991~1992년 2연패했을 뿐 누구도 3년 연속 타격왕을 하지 못했다. 통산 타격왕 4회. 양준혁(1993·1996·1998·2001년)만이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한 기록이다. 당분간 누구도 깨기 어려운 대기록이다.
▲ 3할6푼대 3회
역대 프로야구 한 시즌 최 고타율은 1982년 원년 MBC 백인천이 기록한 4할1푼2리. 그 다음이 1994년 해태 이종범으로 3할9푼3리다. 3~4위는 모두 장효조가 갖고 있다. 1987년 3할8푼7리를 기록했고, 1985년에는 3할7푼3리를 때려냈다. 역대 한 시즌 최고타율 10위 안에는 장효조의 이름만 3차례나 들어가 있다. 1983년 기록한 3할6푼9리는 역대 8위에 해당하는 기록. 역대 10위에 2회 이상 이름을 올린 건 장효조가 유일하다. 그외 선수들은 1차회씩만 이름을 올렸다. 3할6푼대 고타율만 3차례나 기록할 정도로 정확성에서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장효조의 진가는 배트로 공을 정확히 맞히는 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야구계에는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나돌았다. 그만큼 선구안이 좋았다. 10년간 통산 볼넷 506개, 사구 27개. 1983년(0.475)부터 1984년(0.424)·1985년(0.467)·1986년(0.436)·1987년(0.461)까지 5년 연속 출루율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롯데로 이적한 1991년에도 4할5푼2리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출루율 1위만 무려 6차례. 1989~1990년 해태 한대화를 제외하면 누구도 2년 연속 출루율 1위를 하지 못했다. 장효조를 제외한 최다 출루율 1위는 양준혁의 3회다.
▲ 불멸의 야구인
지난해부터 삼성 2군 사령탑으로 활약한 장효조 감독은 그러나 7월 중순부터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7월28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어이없이 역전패한 삼성 2군 선수들은 "감독님이 보셨으면 큰 일 났을 것"이라며 반성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장 감독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그즈음 장 감독을 만난 삼성 류중일 감독은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더라. 가슴이 푹 들어가셨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7월16일 퓨처스 올스타전에서만 해도 정정한 모습이었던 장 감독은 "2군 선수들도 잠실구장에서 한 번 뛰어봐야 한다. 잠실구장 잔디 한 번 밟지 못하고 유니폼 벗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퓨처스 올스타전이라 할지라도 잠실구장에서 한 번 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군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하러 해외에 나가면 뭐하나. 잠실구장 같은 곳에서 한 번 뛰어야 선수도 큰다. 퓨처스도 멋진 곳에서 한 번 올스타전을 치러야 하지 않겠나"라고 역설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선수들을 생각한 불멸의 야구인이었다.
시속 150km로 날아오는 공을 방망이로 가뿐히 되돌려 보내던 그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병마에는 손을 쓰지 못했다. 상대를 압도했던 사자(獅子)의 눈은 영면을 위해 조용히 감겼다.
'영원한 3할 타자'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7일 하늘로 떠났다. 향년 55세. 대구상고(현 상원고)와 한양대를 거쳐 실업 롯데에서 활약했던 고인은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한국의 첫 우승을 이끈 뒤 이듬해 프로야구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데뷔하자마자 타율 0.369로 타격왕을 차지했고 1985년(0.373), 1986년(0.329), 1987년(0.387) 등 4차례나 타격 1위에 오르며 '타격 천재' '타격의 달인'으로 불렸다. '방망이를 거꾸로 쥐어도 3할은 때린다'는 말은 그를 위한 것이었다. 고인이 남긴 통산 타율 0.331은 한국 프로야구 불멸의 기록으로 통한다. 지난해 삼성에서 은퇴한 양준혁이 갖고 있는 역대 2위 기록은 0.316이다.
1988년 시즌이 끝난 뒤 롯데로 트레이드된 고인은 1992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접은 뒤 타격 코치로 롯데와 삼성에서 후배들을 키웠다. 이후 삼성에서 스카우트로 활약했던 그는 2009년 삼성 2군을 맡아 현장으로 돌아왔다.
고인은 7월 올스타 휴식기 즈음 갑자기 살이 빠져 검진을 받았고 위암과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7월 23일 올스타전이 열린 잠실구장에서 프로야구 30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으로 등장해 팬들의 갈채를 받은 게 그의 공개석상 마지막 모습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그 뒤로 집이 있는 부산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문병을 가겠다고 해도 수척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끝까지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젊은 선수들이 동요할 수 있다며 병명을 알리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한국 야구 최고의 타자는 그렇게 죽음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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