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큰언니

눈님* 2010. 8. 31. 12:24

우리 부모님은 슬하에 1남 6녀를 두셨다.

첫아들 오빠를 낳으시고 내리 딸만 여섯을 낳으셨다.

요즈음 하나 둘만 낳아도 키우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키웠을까..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큰 소리 내지 않아도 잘 자랐다고 흐뭇해하셨다.

 

여섯 딸 중 셋째는 태어나자 바로 세상을 떴고 오빠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큰 언니가 75세로 가장 어른이다.

부모님이나 다름없고 실지로 동생들에게나 집안, 친척의 대소사는 어른답게 모범을 보인다.

큰언니에 대한 좋은 추억이 많지만 동생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드러나는 한 가지만 남겨야겠다.

셋째 동생이 '영남예술제'에 학교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시집갈 혼수로 준비해 두었던 옷감을 잘라서 동생에게 옷을 만들어 입혔다는 일이다.

반백 년 전의 일이지만 들었을 때도 지금도 생각하면 뭉클하다.

괴로웠던 일도 하나 남기자.

온종일 뛰어노는데 해가 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넷째 언니와 나를 데리고 냇가로 갔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겨서 아프게 씻겼다. 싫어도 반항도 못하고 울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나도 조금은 영향을 받았지만 나보다 더한 넷째 언니의 위생 개념, 야무진 손놀림은 그때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체로 자매들이 잘 지내는 집이 많지만 우리 남매들의 우애는 참 특별했다.

모두가 큰 언니의 희생과 모범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란 걸 동생들은 알고 있다.

 

큰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큰 우산이 되어 비를 막아주던 큰 언니~

길에 앉은 불쌍한 노인 보면 말동무해 드리고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 드리는 착한 언니

효녀에 열부(烈婦)요 좋은 어머니(자식을 낳지 못해 낳아 온 딸이지만 40년 금지옥엽으로 키웠다)로서 주위에서 살아 있는 부처란 말을 듣는 착한 언니

모진 세월 온몸과 마음으로 주위 사람 사랑하며 베풀던 언니가 약해졌다.

 

자신을 버리고 부모 형제 주위를 위해서 살아온 언니가 오셨다.

막내라며 특별히 사랑을 주셨다.

몸이 편찮으니 마음도 약해지고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을 둘러보고 싶어 하신다.

울컥하는 마음~ 부모님처럼 편히 모셔야겠다는 생각이다.

행아!

절대 약해지면 안 돼.

어릴 때부터 부르던 경상도 사투리 행아(형)

오랫동안 엄마 대신 우리 곁에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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