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홉수

눈님* 2022. 4. 5. 13:42

굿당은 어릴 때 나의 놀이터였다.

지금의 서면은 200만 시민이 움직이는 부산 교통의 중심지로 쇼핑의 천국, 관광의 대표 지역으로 핫한 지역이지만 당시에는 외곽 지역이었다.

서울에 명동이 있다면 부산에는 남포동이 있었고 모든 문화의 중심이었던 시절이다.

서면의 일부 지역인 전포동은 유년 시절 기억의 대부분이었던 곳이다. 

하야리아 부대와 지금의 제일 제당이 있었고 어린 기억에도 그런 곳에 대한 얘기가 많았는 걸로 기억한다.

살던 곳은 전포동의 조금 높은 지대였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절집이 있었고 문둥이가 함께 산다는 소문이 있었다. 내가 흐르는 옆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굿당이 있었다. 큰 굿당이 거리를 두고 두 곳이 있었고 계곡 중간 바위틈 사이에 촛불을 켜 놓고 기도를 하는 곳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바위틈에서 물이 떨어지고 바닥에는 작은 물이 고여있고 바위틈 사이 안전한 돌 위에서 불타고 있는 초의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신비롭고 아름답다.

간절함, 순수함, 열정은 내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친구들과 떼를 지어서 산으로 들로 다니며 꽃을 꺾기도 하고 무작정 쫓아다녔다.

가끔 멀리 굿당에서 꽹과리와 북들의 요란한 소리에 달려가 보면 오방색의 띠를 두른 무당들이 춤을 추고 있는데 늘 신기했다. 신이 나서 방방 뛰다가도 울부짖으며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큰 소리로 누군가를 꾸짖기도 했는데 그러면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나와서 두 손을 모아 절을 하며 싹싹 비는 모습이 가련해 보였다.

모든 게 끝나면 굿당 밖의 사방(동서남북)에 하얀 문종이에 음식을 골고루 담아서 돌 위에 얹어 놓았다.  산짐승이나 날짐승들의 먹이가 되었을 테고 산을 오르내리는 허기진 이들의 배를 채운 고마운 간식이 되었을 것이다.

구경꾼들에게도 떡이랑 과일 과자 등을 나누어 주셨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굿당에서 달콤한 과자를 얻어먹었던 일은 즐거웠던 기억이다.

이런 환경이었는데 살면서 한 번도 점을 하거나 미신을 믿어 본 적이 없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대부분 궁합이나 사주를 보고 날을 받는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남들과 달랐다.

"이미 마음으로 결정했으면 그런 것  아무 필요 없다."

단호함, 결정된 일에 순응하는 성격은 순전히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무신론자지만 남의 종교를 비방할 마음 전혀 없다.  어느 종교나 남을 괴롭히고 나쁜 짓 하라고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가르침은 받아들여 실천하면 좋은 것이다. 무속 신앙도 그들 나름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비난할 필요 없다. 가끔 너무 극단적으로 종교에 빠져 원래의 취지를 훼손해서 손가락질받는 일, 미신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병을 고친다는 이유고 심한 매질로 인권을 유린하는 어리석은 행위 등을 보면 그냥 보기는 힘든다. 

그런 내가 마음이 약해졌나?

'아홉 수가 들은 해는 좋지 않으니 조심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다.

이 말이 미신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일은 잘 믿지를 않는 성격이다.

49세에 인생이 180도 뒤바뀌는 일이 있었다.

69세에 사랑니 발치로 병원 입원, 오미크론 양성 확진으로 격리

세 번 모두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아홉수에 일어났다. 이쯤 되면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믿음으로 바뀌려고 한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2022년 마지막 날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루기 쉬운 남자, 여자  (7) 2022.04.14
라일락에 취한 날  (8) 2022.04.09
오미크론 양성 확진  (6) 2022.03.31
생각 다듬기/2  (4) 2022.03.21
생각 다듬기/1  (0) 202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