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풍성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고 하지만 작년보다 느슨해진 마음과 완화된 방역 탓에 백화점도 시장도 오랜만에 활기를 찾고 고향이나 부모님을 찾는 이동도 많았다.
물가는 종류 상관없이 많이 올랐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참았던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재난지원금이 풀린 여유가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우리 집도 활기가 넘친다.
모두 모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제사를 지내는 처가에 먼저 들렀다가 오고 딸은 추석 전날 시어머님과 식사를 하고 처음으로 추석날 왔다.
이렇게 추석날 함께 모이기는 처음이다.
아들 부부가 먼저 오고 딸 부부는 생각보다 차가 많이 밀렸다며 늦었다.
거실에 큰 상을 펴고 정성 들인 음식을 모두 차려놓으니 그럴듯해 보인다.
"어머니 이렇게 준비하시려면 여러 날 고생하셨겠어요." 며느리의 말에 "아니, 별로~"그러면서도 흐뭇하다
늦도록 스스럼없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신기할 정도로 오랜 가족이었던 것 같다.
딸은 오늘은 아빠가 말씀을 제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남편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독주를 간결하게 정리해서 끊기도 했는데 정말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일찍 일어난 손녀 소리에 딸이 일어나고 내가 일어났다.
조용히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이 일어나고 아들이 일어나고 며느리는 곤한 잠에 빠져있다.
많이 피곤했으리라.
딸과 둘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며느리가 나오며 미안해하며 걱정을 하길래 "피곤하지? " 진심이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아파트 옥상에서 차를 마셨다.
이곳에서는 큰 화분을 이용해서 텃밭을 가꾸고 운동도 하고 고추나 토란 줄기 등을 말리는 일도 있지만 사방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곳이 없었다면 아파트 생활이 답답했을 수도 있다. 구름과 불타는 노을을 보는 황홀함, 서늘한 밤에는 달과 별을 보는 낭만에 이사를 할 생각을 못한다.
"은지 시집와서 처음 맞는 추석에 제일 늦잠 잤는 걸 기자가 알았으면 신문 사회면에 톱으로 났을 건데 ㅎㅎㅎ "
조크로 마음의 걱정을 들어주고 싶었다.
모두 웃으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들 내외는 먼저 올라가고 오후에는 사위랑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를 했다.
가창댐을 지나 헐떡재를 넘어 용천사까지만 갔다. 용천사는 예전에 생수를 길러다 먹던 곳이다.
저녁은 맛있는 음식점으로 가서 먹자고 결정하고 전화를 했더니 세 곳이나 추석휴무라는 안내만 한다.
먹을 게 많은데 집에서 먹자고 하니 모두 엄마가 주방에서 준비하는 게 불편한지 시켜서 옥상에서 먹자고 한다.
부지런한 사위는 옥상에 조명을 밝히고 야영장을 만들고 싶어 하는데 민원 들어오면 안 된다고 겨우 말렸다.
"그러면 조명만 간단히 설치할게요."
조명을 받으며 명절, 집안 행사, 페미니즘 등 많은 얘기를 나누며 낭만을 즐겼던 오늘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밤이 될 것이다.
추석에 특별했던 일은 다섯 살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 용돈이라며 천 원짜리 한 장씩을 주었다.
처음으로 며느리와 함께 한 추석이었다.
내가 처음 결혼하고 제사나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몸이 아픈 것 같고 버스를 타고 큰 댁에 가면 얼굴이 창백하고 쓰러질 것 같았다.
시어머님은 "조금 누웠거라."라고 하셨다.
진짜로 조금 누웠다가 일어나면 괜찮아져서 음식을 만들었다.
우리 시어머님은 그런 분이셨다.
고부간의 갈등, 시집과의 갈등, 마음먹기 달렸다.
나도 나의 시어머님처럼 며느리 마음을 잘 읽을 줄 아는 현명한 시어머니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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