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6개월 전이다.
아들, 딸 만나서 서울에서 5일 정도 머무르다가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황홀한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무슨 일이 일어났지?
두리번거리는 눈앞에 나타난 놀라운 광경.
행운목에 꽃이 피었다.
하얀 작은 꽃이 한 무리를 이루고 그것이 다시 숭어리 숭어리 군락을 이루었다.
손녀의 보드라운 하얀 속살의 팔뚝보다 더 큰 꽃송이다.
우리는 복은 짓는다고 하지만 행운을 비는 마음도 갖고 있다.
지금 행복해하는 이 감정만으로도 행운목은 그 역할을 충분히 했어.
지금은 왕래가 끊어진 친구, 옥분이 생각이 떠 올랐다.
꽃가게를 하던 친구였다.
블로동 꽃단지에 가서 직접 질 좋은 화분을 고르고 큰 화분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스티로폼이나 불순한 쓰레기를 넣지 않았다. 진심으로 식물이 오래 살도록 좋은 흙과 거름을 넣어 화분을 만들어 팔았다.
30년이 넘도록 이렇게 잘 자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심으로 식물을 사랑하는 꽃 같은 친구였다.
실익 없이 너무 양심적으로 꽃집을 운영했고 씀씀이가 크고 현명한 소비를 하지 못해서 꽃가게를 오래 하지를 못했다.
나에게 미안한 일을 했지만 좋은 친구로 남고 싶었는데 연락이 끊어졌다.
돈보다 사람이 중하기 때문에 몇 번 연락을 해도 오히려 친구에게 더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노후를 위해 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하라는 친구의 말에 더 연락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가도 가끔 생각하는데 이제야 연락이 왔다.
행운목에 핀 한 아름 꽃이 친구의 큰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2018년 4월 2일
그런데 지금 행운목은 너무 키가 커져버렸다.
천정을 뚫지 못하니 옆으로 누워버린다.
물과 사랑을 주었을 뿐인데, (아참, 계란 껍데기) 이렇게 잘 자랄까?
아마 친구의 마음이 행운목에 고스란히 깃들어 나에게 행운을 주라고 비는 건 아닌지......
남편은 밖으로 들어내자고 하지만 실내 제 자리에 그냥 두고 싶다. 그러려면 윗부분을 잘라야 하는데 어디쯤이 적당할까, 자르면 혹시 다시는 꽃이 피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 중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야 누나야 다시는 강변에 살지말자 (0) | 2021.10.19 |
---|---|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0) | 2021.10.16 |
딸의 마음 (0) | 2021.10.10 |
수변공원 (0) | 2021.10.06 |
하늘의 어느 별이 당신의 별인가요 (0) | 2021.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