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봄을 타나 보다.

눈님* 2026. 3. 23. 00:31

완연한 봄이다.

실내보다 햇볕 받는 베란다가 더 따뜻하게 느껴져 거실문을 활짝 밀고 밖의 온기를 받아들였다.

집안의 화분 두 개를 밖으로 옮기고 새잎이 힘차게 나오도록 오래된 잎들을 정리를 했다. 오랜만에 베란다 화분들도 봄 맞을 준비로 정리를 하다 보니 갑자기 여기저기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병원 핑계로 겨울 내내 묻어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무엇부터 먼저 할까?

 

봄이 올 때쯤이면 조금은 들뜨던 기분이 올해는 노곤하기만 하고 무기력했다.

대출한 책도 모두 읽지 못하고 반납을 했고 다시 대출한 책도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도 마음이 내키지를 않아서 메모만 늘어나고 있다. 

나이 탓인가?

메모나 기억에도 한계가 있으니 나의 이야기부터 정리를 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자.

 

산세베리아 묵은 줄기

 

 

왕과 사는 남자

상영 초부터 아이들이 예매해 주겠다는 걸 언니랑 봐야 할 것 같아서 미루다 보게 되었다.

관중 1300만 명 돌파라기에 가면 바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을 빗나갔다.

2시간 후의 상영, 앞에서 2번째 줄이지만 예매를 하고 안경점, 남편과 언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단종애사)나 드라마로 너무나 잘 알려진 비극의 역사를 잘 알기에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예전에 청령포를 다녀온 얘기를 나누나 보니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는 늘 뒤에서 2~3줄에서 보다가 너무 앞쪽이라 화면이 익숙하지 않다. 수면 부족으로 초반에는 조금 졸리는 기분이었는데 호랑이가 나타났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고 어린 노산군의 군왕다운 기상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내가 너무 경직되게 살았는지 조금 과하다 싶던 유해진의 연기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주위 인물들의 연기도 익숙해졌다. 약은 듯 하지만 순박하고 따뜻한 감성을 보여주는 연기자들, 영혼까지 탈탈 털린듯한 노산군의 비애에 젖은 눈망울, 계속 눈물이 났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계유정난 당시의 상황은 영화보다 더 참혹하고 잔인했을 것이다. 만약 금성대군에 의해서 단종 복위가 되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조카와 저녁 먹기로 한 약속은 영화 보는 시간이 늦추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잘 됐다.

극장 앞으로 와서 바로 식당으로 가니 벌써 대기해야 할 정도다.

이곳 미남 장어는 조카와 만나면 가는 곳, 이제는 익숙하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특별히 주문한 라이스페이퍼에 장어를 싸서 먹는 재미가 있다.

예전에는 안주가 좋으면 술을 먹었는데 이제는 남편, 언니, 나, 모두 원하지 않는다. 모두 건강하게 100세를 누리려는 야심을 품은 듯하다.

조카는 따로 포장을 해서 집에 가서 편하게 술을 먹는 걸로..

이모부 생신, 이모 퇴원 기념이라며 봉투를 준다. 이럴 때면 진짜 윗어른이 된 것 같다.

 

 

산책을 하거나 마트에 가며 오는 길에 미뤘던 전화를 한다. 주로 손위 사람들이다. 가끔 귀찮을 때가 있지만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이 더 크다.

서울 큰 형님의 망설이는 기척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통장 확인 해보지 않았나? 설이라고 돈을 조금 보냈는데~~~~

시집와서 큰일 있을 때나 명절, 제사 모두 너무 수고했는 걸 안다,며 쑥스러워하신다.

은행에 가지를 않으니 통장정리를 제때에 하지 않아서 몰랐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애를 먹었지만 일을 조금 알고나서부터는 동서들이 늦거나 오지 않아도 혼자서 노래를 불러가며 즐겁게 했었다.

시어머님이 계실 땐 함께 했고 동서는 서점을 했으니 재료는 모두 준비해 주셨지만 혼자 할 때가 많았다.

요즘 형님 건강이 더 좋지 않다고 하더니 마음이 약해지셨나, 불안이 스친다.

언젠가 형님 얘기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18년 봄/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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