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남해
남쪽 바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우리 가곡 '가고파'는 즐겨 부르던 노래다. 정서적으로 감정 이입을 쉽게 할 수 있으니 다른 곡보다 부르기도 쉬웠던 것 같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려 여러 곳 후보지 중에 택한 곳이 남해다.
노후 삶은 남해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걸 보면 물, 공기, 경치가 좋고 인심도 좋아서 일 것 같다. 맛있고 신선한 해산물도 풍부하고.
서울 대전 대구에서 각기 따로 가야 하는 불편은 있다. 한양 천리, 걷거나 말을 타고 다닌 선조들에 비하면 교통 걱정은 사치.
동대구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된다는데 굳이 전날 대구로 와서 모시고 가겠다는 사위. 이 나이에 남편이랑 둘이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낭만도 있을 듯한데 자식 된 입장에서 그러고 싶지 않다니 고맙기도 하고 장거리 버스여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다음 날, 시간 여유가 있어서 국도를 선택하니 이름난 곳, 특히 내 고향 진주를 지날 때는 얘깃거리도 많았다. 높은 차의 앞좌석에 앉으니 전망이 확 트이고 순간 포착도 쉬워서 사진 찍기가 좋으니 기쁨은 두 배. 커피는 조수인 내가 산다.
'남해 아난티'
먼저 도착한 아들 부부와 합류
한적한 시골 어촌, 바닷가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배용준이 신혼여행을 왔던 곳이라니 나만 몰랐을 수도 있겠다. 바다와 작은 섬들, 예쁜 등대가 둘, 아담한 숲길과 작은 항만에 정박한 배들, 야트막한 동산의 양쪽으로 18홀의 그린이 펼쳐져 있다.
손녀는 이렇게 럭셔리한 곳은 처음이라며 대만족이다.
짐 정리 후 가벼운 산책 중에 맞이한 일몰~섬 사이로 넘어가는 진홍의 일몰에 '우와!!' 감탄사 연발, 모두 카메라 맞추기에 바쁘다.
조금 불편한 것은 식사 문제다. 이곳의 높은 가격에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았는데 마지막 날 조식만 이용하고 나머지는 현지나 배달음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조식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분위기상 입을 꼭 다물었다.
음료, 과일, 기타는 딸이, 케이크와 샌드위치는 며느리가 대전 성심당에서 준비를 했다.
회, 족발, 수육보쌈, 치킨, 배달료가 2만 원씩이라니 부지런한 사위가 직접 가져오겠다며 나섰다.
멀리 밤바다 어선들의 불빛을 보며 우리 가족의 아모르파티는 깊어만 갔다.












수영을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딸 가족은 남아서 수영을 즐기고 오후에 합류, 아들 부부와 여수로 목적지를 정했다. 통영, 순천보다 여수로 갈 기회가 드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여수를 들렀던 기억이 있다. 한가한 시골 어촌, 바다, 어둠, 나그네, 빈곤...... 따뜻하고 아련한, 그러나 짠한 마음이 그려지는 곳이다.
생각보다 먼 거리, 겨울 풍경은 삭막하지만 생각 나름이다. 조금은 다른 지형의 높고 낮은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그동안 외국의 웅장한 산들을 부러워했던 마음이 가신다.
산겹겹 물첩첩, 아름답다 내 나라여!
자유와 정의와 사랑 위에 오래거라, 내 역사여!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우리 강산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글이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는 여수가 아니다.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노출된 배관들이 끝없이 뻗고 꺾이는 구조물들이 즐비하다.
여수국제박람회가 열리면서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주위도 많이 정비가 되었는 것 같다. 관광객을 위한 공영주차장은 무료 개방이니 불법주차는 드물 것 같고 여수의 이미지도 좋을 것 같다.
깨끗한 도시, 아름다운 건축물, 항만에 정박한 하얀 배들, 깨끗한 바다, 날으는 갈매기, 오동도로 가는 내내 '이곳에 잘 왔다'를 연발했다.
'내 마음의 나폴리다!' 감탄하니 그럴 때마다 아들이 웃어준다.
오동도의 상징 같은 동백은 봉오리만 맺혔다. 활짝 피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 잡목들 사이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수다가 대단하다. 하얀 들고양이들의 해바라기도 정말 귀엽다. 이왕 왔으니 해안동굴이 있는 아래까지 내려가자며 앞장섰다.
남편은 피곤해 보이고, 며느리는 무관심이지만 효심으로 버티고 나만 신이 났는데 아들은 모두를 아우르려는 듯 마주치는 눈마다 웃어준다.













점심은 두 팀 따로 해결하고 여수 해상케이블 앞에서 만났다. 서로 계산을 하겠다며 나섰는데 아들이 당첨!
경로 우대도 되지 않는 크리스털 케빈 선택, 인원 제한으로 두 팀으로 나누었는데 의외로 곤욕과 재미가 있었다. 게임이나 무엇을 하던 늘 손녀 위주로 사람 선택을 하니 외삼촌과 외숙모와 한편으로 만족, 돌아올 때는 엄마 바라기 손녀 때문에 편 가르기 어려워서 여자, 남자로.
문이 닫히기 직전 사위가 무단 탑승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
여탕에 침입한 남자!
아빠 그러면 안 돼요!!! 정직, 약속을 중히 여기는 모범 어린이는 진짜 화를 낸다. 아빠와 딸은 톰과 제리 같아 늘 아옹 다옹이지만 옆에서 보는 우리는 눈물 쏙 나도록 웃고 재미있다.



여성 전용칸의 무단 침입자~~손녀는 경악하며 토라졌지만 우리는 웃음 폭발



어제 산책 때 마주한 일몰도 좋았는데 오늘 케이블카 위에서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늦잠꾸러기라 일출을 볼 기회는 없어도 아파트에서 일몰은 자주 본다. 그러나 바다에서, 섬 사이로 넘어가는 일몰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나의 노후도 일몰 같기를 염원하며.
이번 여행에서도 시시각각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으로 변하는 일몰은 가장 기억에 남을 장면으로 꼽을 것이다.




저녁은 여수에서 포장해 온 회와 배달 치킨으로~~ 내일 일찍 먼저 떠나야 할 며느리와 피로감을 느끼는 남편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태블릿 pc 게임 자유를 얻은 손녀는 혼자서 잘 놀고.
사위, 아들, 딸 독차지한 나, 이럴 수 있는 것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 침실에서 잘 노는 손녀가 예쁘서 케이크의 딸기를 입에 넣어주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는 정성을 들였다.
한참을 지나서 손녀의 비명, 구토에 열이 났다. 해열제를 먹여도 떨어지지 않고 딸과 사위는 날밤을 새우고 일찍 떠났다. 토하고 나면 괜찮은데 혹여 장염이 아닐까 병원을 가기 위해서다.
며느리도 아침 일찍 먼저 떠났고 셋만 남게 되었다.

원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아버지의 등,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눈빛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기대했던 조식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과일과 디저트만 먹었다.
손녀는 체했는데 수액을 맞고 잠들었고 서울로 가고 있다는 안도의 소식.
아주아주 어릴 때 엄마는 감을 담은 함박지를 머리에 이고 이곳 함안 장에 감을 팔려 왔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남다른 곳이다. 엄마 생각에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엄마, 어디든지 지나다가 사진 찍고 싶은 곳 있으면 얘기하세요."
내가 낳았지만 어쩜 이리도 다정하고 살가운지, 늘 찡한 울림을 준다.


함안 휴게소



아들은 집에 도착해서 차만 한잔 마시고 바로 간다고 한다.
다행히 며느리도 일을 잘 마쳤다고 하고.
저녁에는 손녀의 맑은 목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말로써, 행동으로 표현하는 가족이어서 참 좋다.
짧은 시간, 최대 효율적으로 활용,
손녀의 체증으로 많이 걱정하긴 했어도 좋은 추억 만들기엔 충분한 여행이었다.
먼 훗날, 내가 세상에 없더라도 아이들이 이곳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했던 얼굴들을 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