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할 수 없는 마음
눈물을 보일 뻔했다.
고마워서
옆에는 남편이 앉았다.
눈물을 보일 뻔했다.
미안해서
마주 보고 앉은 조카
조카 옆에는 언니가 앉았다.
삶의 길 위에서는 가난도 꽃이었다.
나의 삶이다
말장난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가난이 무슨 꽃이라고!
피부를 태울듯한 기세의 여름도 꺾이고 가을이 오니 너도나도 가을 놀이에 바쁘다.
나라 안팎이 시끄럽지만 그건 남의 얘기다.
티스토리에 올라오는 가을꽃이 손짓한다.
떠나볼까?
잠시 생각뿐 떠나는 건 태생적으로 잘 맞지를 않는 것 같다. 안 갈 이유, 못 갈 이유는 만들면 된다.
대신 맛난 것이나 먹자는데 의견 일치다.
언니랑 조카, 우리 부부 넷이서 합의를 본 곳이 장어집이다. 각기 다른 식성이라 맞추기 쉽지 않다.
언니와 나는 외식은 맛도 좋지만 집에서 쉽게 조리할 수 없는 곳을 선택하는데 우선을 둔다.
남편은 백내장 수술 이후라 당분간 금주, 조카는 아침 일찍 가야 할 곳이 있고, 언니와 나는 분위기 때문에 먹는 술인데 술꾼도 아니고 오늘은 모두 콜라로 통일하기로 했다. 장어구이를 놓고 술을 먹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다.
언니 다리 인공관절 수술, 남편 백내장 수술도 성공적이고 조카가 하는 일도 안정적으로 잘 되고 있어서 분위기 좋았다. 나 역시 컴퓨터 배우는 재미에 빠진 얘기가 빠질 수 없다.
맹이나물 절임과 따로 부탁한 라이스페이퍼에 싸서 먹기 좋아하는 언니, 생야채를 즐기는 남편, 생강절임과 일반소스를 즐기는 조카, 생강채와 겨자소스를 좋아하는 나, 제각각이다. 톡 쏘는 콜라도 술 대용으로 괜찮은 듯하다.
'삶의 길 위에선 가난도 꽃이었다'
OJ아 어떻게 생각해?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보내고 사회출발을 화려하게 하고 성공을 했지만 너무 젊은 20대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큰 욕심을 버리고 소규모 자영업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조카에게 물었다.
어릴 때 많이 업어주고 어른이 되어서도 얘기가 통하는 특별한 이모와 조카 사이다.
타고난 성품은 착하고 여리고 아는 것도 많고 재미있고 사는 멋도 안다. 결혼생활은 실패를 했지만 반듯하게 장성한 두 아들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며 살았고 어려움도 있었으나 지금은 편안해 보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공감할 줄 알고 물었더니 의외로 언짢은 반응이다.
남편과 조카 얼굴을 스치듯 바라봤다.
고마움과 미안함,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한다.
같은 사물을 놓고도 보는 시각과 느낌이 다르듯이 우리의 삶도 그렇구나.
다시는 남의 생각을 물을 필요도 없고 관심을 갖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삶의 길 위에선 가난도 꽃이었다'는 나의 생각일 뿐이다.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과 위로를 받는 것 같아 격하게 공감하며 웃을 수 있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서러움과 아픔을 들추는 고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걸 미처 몰랐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얼굴들이 많다.
부모님과 오빠 언니들과 형부, 남편과 가족들, 살아오면서 나와 가까이서 함께 한 모든 분들에게 찐하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산울림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