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름으로
화가 난다.
눈물이 난다.
책을 읽고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명의 존엄성과 사랑에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틀림없이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줄 알면서도 스스로의 화를 삭이기 위해서 긁적이고 있다.
어떤 책이든 보면 빠져든다. 밤을 새우면서라도 읽고 싶지만 함께 사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늦게라도 눈을 붙인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은 보면서도 졸기 일쑤였다. 충분한 수면을 취했는데도 졸음이 오는 것은 무기력하게 기가 빠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조금 남기고 또 잠을 잤다.
'항우울증 복용과 수면제의 도움'이란 표현이 심히 거슬린다.
언젠가 날짜 기억은 없는데 가족과 건강, 죽음~~이런 문제로 딸과의 대화가 있었다.
그때는 어려운 시기였고 남매도 사회 초년생이었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조금은 격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무교라 종교인들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실용 가치를 존중하는 나의 생각을 얘기했다.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도 만약에 엄마가 회생 불가의 상황이 되면 절대 연명치료하지 마라."
구구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딸은 눈물을 보이며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속상해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될 때는 어떤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부모의 생명을 연장하는 게 맞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집이며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팔아서 회생불가능인 부모 생명 연장하는 것은 절대 반대다. 자식 못살게 해 놓고 죽는 것 원하는 부모 없다. 식물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도 어쩌면 불효일지 모른다. 안락사도 괜찮은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20년 동안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간호한 남성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엄마가 시장에서 새벽 장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남매를 키웠다. 3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고 전공분야에 두각을 나타내었고 대학원까지 등록한 상태에서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4개월의 중증 병원 생활을 했지만 병원에서는 식물인간으로 판정, 대학원을 포기하고 집에서 개인 간호를 시작, 병원의 병실을 옮겨놓은 것 같은 간호 비품과 기구를 갖추고 하루 24시간 간호. 정상적인 생활은 거의 포기.
8년간 엄마의 간호 경험을 책으로 발간. 방송을 타고 사회에서 알게 되었다.
많은 병원비로 집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고 요양병원에 모셨지만 개인 간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간호에 일주일에 3~2회 방문해서 직접 목욕 등 보살핌.
취직은 엄마 간호와 병행할 수 있는 곳을 택하니 병원비, 생활비는 늘 모자람. 신앙심이 두터워 언제나 필요한 돈이 예기치 않게 마련됨은 하느님이 보내주셨음을 굳게 믿고 감사드렸다. 어려움 속에서도 남의 어려움에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12년간에 5곳의 요양병원을 거쳤다.
20년간 지극한 아들의 보살핌과 사랑이 있었지만 엄마는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다.
작은 병실보다 더 넓은 세상, 밝은 햇빛을 볼 수 있고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홀가분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린다.
20년이란 긴 세월 엄마가 자식을 포기하지 않듯이 자신이 엄마가 되어서 아픈 딸아이를 간호한다는 마음이었으니 그 정성 오죽하랴.
기약 없고 희망 없는 일이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견뎠던 세월, 자신은 늘 감사하는 마음이고 행복했었지만 사실은 피폐해진 육신.
'항우울제 복용과 수면제 도움'
다행히 함께 간호하자며 마음을 준 아내와 두 딸이 있고, 무거운 그 무엇을 내려놓았는 홀가분함. 지금까지의 많은 경험으로 사회적인 사업 구상에도 능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이 사회에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간다.
*연합뉴스*
이런 내 마음을 적다 보니 우울하던 기분이 나아져 버렸다.
어머니를 정성껏 간호하던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하던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고 그의 삶은 행복할 것이다.
이미지를 찾다가 위의 사진 발견
작가분에게 바치고 싶은 마음으로 옮겨왔다.
*사람의 그림자 주변으로 무지개가 퍼지는 ‘브로켄(Brocken) 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