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표현은 아끼지 말자
1
작년쯤 서울 둘째 언니가 부탁을 했다.
듣고 싶은 호칭이 있으니 그렇게 불러달라고.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그것쯤이야, 단번에 실천이다.
jns여사님!
언니의 높고 경쾌한 웃음소리는 청춘이다.
어려서부터 불러온 '행아'는 우리 자매의 공통 언어, '언니'의 경남 사투리지 싶다.
누가 들으면 뭔 말인지는 못 알아들어도 눈치로 언니를 부른다는 걸 알 수 있다.
느즈막에 왜?
80세를 훌쩍 넘기니 잊혀가는 내 이름을 누구라도 한 사람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통화를 할 때마다 jns여사님, 다정히 부르면 기분 좋은 웃음 한바탕 웃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며칠 전 jjs여사님!
아들이다. 약간 당황했다.
성격이 재치와 상황 적응력이 뛰어나지를 않아 어물쩡거렸고,
아들의 성격도 익살, 넉살과는 거리가 먼데 웬일?
계산해 보니 아들 나이가 중년, 조금은 사회와 타협하고 여유를 부릴 나이다.
해학적인 언어로 정적인 엄마를 웃기고 즐거움을 주려는 뜻인 듯하다.
아마도 '내 이름 석 자' 글을 보았는 것 같다.
엄마!라고 부를 땐 아직도 내 품의 자식처럼 "돌보아주어야지"란 느낌이었다.
그런데 jjs여사님! 부르니 동격이거나 돌봄을 받는 느낌이 든다.
jjs여사님 호칭에 버금가는 아들의 이름 아닌 다른 호칭을 생각해 봐야겠다.
말도 주고받는 재미가 얼마나 꿈잼인데.
예고 없이 천연덕스럽게 불러주는 호칭에 웃고 재미있었다.
이런 이벤트 가끔은 필요하겠다.
그래도 처음 말을 배울 때부터 부르던, 울고 웃고 싶을 때, 의지, 자랑하고 싶을 때, 어떤 상황이던 제일 먼저 부르던 호칭 '엄마'라는 부름이 좋다.
지금도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입은 모나리자가 되고 눈은 초승달이 된다.

제주도 함덕해수욕장
2
올해만 벌써 3명의 친구가 배우자를 보냈다.
모두 80대를 맞이하지 못한, 조금은 아쉬운 나이다.
젊을 때부터 관리를 잘하면 100세 시대를 지나 130세까지도 살 수 있는 시대라는데.
모두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는 걸 알면서도 현실에선 내 몸만 생각할 수도 없었다.
삶의 현장은 치열했고 살아남아야 했고 가족을 지켜야 했던 사람들이다.
아버지, 남편, 아들의 역할을 해야 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의 회한을 노래한 '남자의 일생' 콩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갑자스러운 고통에 응급실로 갔고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의료분쟁으로 큰 병원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헤맨 게 시간적으로 문제가 있었는 것 같다.
친구는 침착함을 유지한 채 담담히 들려준다.
"마지막 말 한마디 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남편은 너무 착한 사람이었고 나도 최선을 다했지만 작은 불만은 있었다."
"여보, 사랑해! 란 말을 듣고 싶어 했어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
"의식 없이 누운 남편의 귀에 대고 '여보, 사랑해!'를 수없이 들려주면서 목이 메었다."라고 한다.
"반응은 못하지만 틀림없이 들었을 거야" 라며 위로했다.
어릴 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살 수가 있어요?' 울며 떼를 쓰던 일이 가끔 있었다. '그래도 다 살아간다'는 아버지 말씀은 한결같았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거짓이 아니고 잘 살아왔고 어떤 상황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젠 그런 나이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솔직히 말하자.
가족에게 애정 표현은 아끼지 말자.
글이나 마음으로서야 그러고 싶지만 실천은 하기가 쉽지 않은 게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나 후회 남기지 않도록~

부산 해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