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 수거/할머니와 손자/ 울보자매/우울함의 재구성
1
넷째 언니와의 통화는 길어진다.
형부 돌아가신 후의 슬픔을 자매들이 무한정 들어준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시간 절약상 외출 시 오며 가며, 저녁으로 걸을 때 주로 한다.
노인 특유의 잔가지가 늘어지고 미로를 헤매는데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치면 "됐고"로 정리를 하는 편이다.
오늘 통화에서 받은 감동
작년
"딸과 며느리가 주방에서 행주와 수세미를 사용하지 않고 물티슈로 해결하더라. 너무 깨끗하고 편리하고 경제적이기까지 하니 나도 할란다."
"언니, 절대 안 돼! 환경에 대한 얘기 구체적으로 설명, 젊은 얘들이야 너무 바쁘고 편리하다고 하니 부모라도 어쩔 도리 없지만 한가한 우리라도 환경문제 신경 쓰자. 남들이 뭐라 하던 우리는 '환경운동가'라는 자부심을 같자."라고 부추겨 세웠다.
그 후 언니는 나보다 훨씬 더 분리수거 철저히 하는 것 같았다.
"기름병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내어놓는데 언니는 어떻게 해결해?"
"뜨거운 물을 부으면 된다"
우와, 박수!

2
OS 이는 백화점 마니아
둘이 만날 땐 백화점 내 식당가, 식사 후 커피숖까지 정해져 있다.
오늘은 너무 더운 날씨라 교통이 더 편리한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000 버스, 카드 찍고 내리기 좋은 자리도 알고 있다.
오늘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바로 뒷좌석에서 할머니와 손자와의 대화가 들린다.
버스를 탈 때 '사랑합니다'란 멘트가 나왔으니 75세는 넘은 분이다.
할머니의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는데 전혀 불쾌하지를 않다.
너무 다정하게 들려서 돌아보고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화에 방해를 하고 싶지 않았고 귀를 더 쫑긋 기울였다.
할머니가 푼푼이 모은 돈을 둘째 손자에게 주시면서 주의할 몇 가지를 일러주시는 내용이다.
정기예금으로 묶어둬라, 절약정신, 꼭 필요할 때 사용, 형과의 우애 등이다.
말소리를 조금만 들어도 사람의 성향 파악이 어느 정도 된다.
할머니의 뜻에 보답하는, 자신의 의견도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는 손자의 목소리는 착해 보였다.
용돈을 받는 입장에서 눈치 보는 게 아닌, 진심으로 할머니 말씀에 공감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돈이 모아지면 또 더 주겠다고 하신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연세면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돈을 써라는 말을 한다.
나 역시 그러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대화를 들어보니 손자의 장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게 더 행복함을 느끼시는 것 같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따뜻한 사랑을 받은 손자는 어떤 유혹에도 비뚤어지지 않고 바른 길을 갈 것 같다.
20여 분간의 다정한 대화에 공짜 힐링의 행운을 얻었다.
옥에 티라면 할머니의 똑같은 말의 반복ㅎ
착한 손자의 묵묵한 경청에 엄지 척!

3
언니의 두 번째 다리 수술은 많이 아파서 이틀을 울었다고 한다.
화도 나고 속이 상한다.
바보처럼 참지 말고 간호사나 간병인께 이야기를 하라고 짜증을 냈다.
과일, 음료수, 치킨을 준비해서 면회를 가려는데 습도를 동반한 무더운 대구 날씨, 여차하면 누구랑 시비를 걸 것 같다.
따가운 햇볕이 쏘아붙이는 서향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전광판에 19분 후 도착이 뜬다.
평소에 이용하던 버스를 보내고 새로운 코스가 가까울 것 같아 이용하려던 버스다.
뭐야?
머리끝까지 욱하는 성질이 뻗쳐 눈물까지 핑 돈다.
모자, 안경, 땀범벅의 화장, 눈물, 무거운 가방, 더위, 버스 대기 시간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만한 사람이 남편이라 전화로 하소연했더니 위로는 고사하고 '시원할 때 가지'더 화만 부추긴다.
끊어요!
아직 11분이나 남았다. 상냥한 딸에게 위로받아야겠다.
자초지종 하소연을 하니 "어떡해, 택시를 타세요."
"거기가 얼마나 먼 데"
차를 없앨 땐 남편의 반대가 워낙 심해서 택시를 타면 된다고 억지를 부렸는데 특별한 일이 아니면 대중교통 이용이 습관화되어 버렸다.
무더위와 배차시간 긴 게 특별한 일인가 판단 불가.
딸과의 대화는 빛의 속도, 조금의 안정을 얻었다. 버스 안의 시원한 환경에 바로 평상심을 찾았다.
언니가 미안해할까 봐 조금 전의 상황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언니는 항생제를 끊으니 입맛이 조금 돌아온 것 같다며 치킨을 맛있게 먹는다.
아픈 것도 좋아졌다니 기분이 너무 좋아 조금 전의 일을 얘기했더니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아프다고 우는 언니, 덥다고 우는 동생
초등학생도 아닌 어린이집 아이의 얘기인 줄 알겠다며 '우리는 울보 자매네'
웃음 폭발!

4
2024년 두류 공원 치맥 페스티벌
세 번째 참여를 했다.
어렵게 잡은 자리, 남편은 자리를 지키고 재빠른 내가 긴 줄을 기다려 치킨과 생맥주를 샀다.
해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걸 보니 성공한 대구 페스티벌이란 생각이 든다.
맑은 밤하늘, 화려한 조명의 두류 전망대, 이월드 놀이 기구 불빛이 아름답다.
무대는 싸이키 조명과 댄스곡으로 한여름밤의 더위를 잊게 해 주고 있는데 별 흥미가 없다.
치킨도 맛이 없고 시원해야 할 맥주는 미지근해서 완전 김빠진 맥주 느낌이다.
남편은 치킨도 맥주도 주욱~~ 입만 댄 내 맥주까지 비웠다.
오늘의 본 축제도 시작하기 전 집으로 와버렸다.
배가 고파서 컵라면으로 해결하고~~~
우울함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다음 날도 기분이 다운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유는 있다. 설명하기 애매한 심적으로 불편한 일들이.
이런 기분 빨리 탈출해야 하는데......
'범죄의 재구성' 영화 제목이 갑자기 생각난다.
우울함의 재구성!
낮부터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남편, 언니, 조카, 커피를 든 방문객, 양파와 감자, 치맥 페스티벌.
메모를 하다 보니 픽 웃음이 난다.
누가 나에게 불편한 말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랬다.
문제는 말투다.
더구나 배려심 없이 생각 않고 던지는 말투는 잘하고도 서운한 마음을 갖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적다 보니 우울함이 싹 가시니 괜찮은 방법 같다.
우울함의 탈출~~ 성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