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냉파!
젊은이들 사이에 사용하는 냉장고 파먹기 줄임말이라고 한다.
스피드 시대고 최대한 줄임말로 문자를 주고받는 그들의 세계에서 가끔 헤매지만 이건 알 수 있어서 기분 좋게 사용해 본다.
며칠 전 한글날이 지났는데 세종대왕께서 이해하시려나 모르겠다.
철없는 젊은이들 어여삐 여기시옵소서!
추석 이전부터 쌓여 온 식자재들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식사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한번 배달을 시키려면 일정 금액을 넘겨야 하니까 소비보다 쌓이는 게 많다.
버릴 수는 없고, 일단 당분간 장보기를 중지하기로 했다.
하나씩 빈통이 생겨지고 믿기지 않을 만큼 냉장실에 여유가 생긴다. 냉동실도 마찬가지다.
탄력이 붙었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도전이다.
무엇이 먹고 싶으냐 물으면 '맛있는 추어탕'이란 말이 쉽게 나온다.
어릴 때는 논이나 냇가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호박잎 넣어 푹 끓여서 마늘, 청양고추, 산초를 뿌려주신 어머니 손맛, 어른이 되어서는 식당에서 사서 먹었는데 정말 구수하고 맛있었다.
국산 산초가루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대구에는 남산동 '오미정'이란 곳의 추어탕 맛이 유명해서 자주 먹었고 가까운 청도는 추어탕의 본고장이라 기회만 있으면 갔다.
오미정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청도는 예전의 추어탕 맛을 내는 곳은 보이 지를 않는다.
언제부턴가 농산물뿐만 아니고 모든 제품에 중국산이 없는 게 별로 없다.
토종 미꾸라지로 끓인 추어탕집 찾기 쉽지 않다. 가격 차이가 워낙 크니 식당에서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중국산 미꾸라지란 걸 감안하고 여러 곳에서 먹어봐도 흉내만 내었을 뿐 예전의 맛이 아니다.
냉동실의 조기새끼, 우거지, 토란줄기, 고사리를 이용해서 추어탕을 끓여보자.
예전 어머니는 작은 갈치나 고등어를 뼈는 채에 거르고 된장, 나물 넣고 국을 끓여주신 기억이 난다. 여기에 산초가루만 뿌리면 추어탕 맛과 비슷하다는 걸 생각해 냈다.
'쥐가 조기를 물어다 놓고 3년을 울었다고 한다. 머리를 떼어버리고 나니 먹을 게 너무 적어서 그랬다'는 말처럼 새끼 조기는 머리 떼고 지느러미 자르고 뼈 바르면 살코기는 정말 적다.
뼈 바르다가 짜증 내는 남편 눈치로 구이로 선택받지 못한 새끼 조기는 불쌍한 신세가 되어 냉동실에 잠자고 있었다.
냉동조기, 소주, 된장, 고추씨를 넣고 푹 끓였다.
뼈를 채에 거르다가 복잡해서 분쇄기에 뼈째 곱게 갈았다. 예전에는 분쇄기가 없어서 구멍이 큰 채에 뼈를 걸렀지 싶다.
분쇄기 성능 좋고 뼈까지 먹으면 건강에 좋으니까 일석이조다.
쌀뜨물에 무, 토란 줄기, 우거지, 고사리, 대파, 국간장 푹 끓임
마늘 넣고 한소끔 더 끓였는데 뭔가 부족해서 된장 추가, 생강 진액 조금, 소금, 까나리액젓으로 간 맞춤.
(나물을 밑간을 먼저 했어야 했다)
마지막에 옥상에서 재배한 깻잎과 깨순을 넣고 살짝 끓임.
성공이다.
산초가 있어야 추어탕의 제맛을 내는데 오래 보관된 산초가 미덥잖아 통후추를 바로 갈았다. 청양고추 듬뿍, 다진 마늘, 넣어서 먹으니 예전에 먹었던 추어탕 맛과 비슷하다.
이렇게 해서 제품으로 내어놓으면 시중에 파는 추어탕 식당은......

49년 전 친정어머니가 사주신 뚝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