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시간은 내 편이다

눈님* 2023. 7. 29. 08:42

똑똑똑~

"상훈님!

변 보셨어요?"

"예, 어제 보았습니다."

"잘 됐네요. 이제 보조식품 하루에 2 봉지만 드시도록 해요."

멀고 먼 길 돌아서 요즈음은 짧은 대화를 나눈다.

"저~상훈님

오늘 사물함 정리해 드릴까요?

정리하면 공간도 넓어지고 훨씬 사용하기가 편리한데요?"

숨을 죽이고 눈치를 봤다.

침대 바닥만 내려다보고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예."

역시 시간은 내 편이다.

 

요양원의 창문을 제외한 구석구석을 말끔히 정리하고 반짝이도록 닦았다.

창문은 요양원 요건에 맞는 설치로 밖은 손을 댈 수가 없다.

많은 공간을 나누어서 청소하고 수고했다며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런데 아직 정리되지 않은 한 곳, 상훈님의 침대와 사물함이다.

침대 위에는 신문 책 옷 타월 외에도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고

사물함에는 옷 봉지 세면도구 외에 알 수 없는 봉지들이 꽉 차 있다.

몇 번이나 정리를 해드리려고 해도 손도 대지 못하게 하신다.

마음의 상처를 받으실까 봐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도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더 정성을 들여서 마음을 열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경험상 진심으로 정성을 들이면 시간이 걸릴 뿐이지 마음이 통한다는 걸.

 

심한 변비로 고생이 말이 아니다.

식사를 드려도 배가 아픈데 어떻게 먹냐고 불만스럽게 물리치고 아락실만 찾고 계신다.

침대에 눕거나 앉아서 바닥만 쳐다보고 계시기를 밤 낮 없다.

너무 약에만 의존하지 말고 찬을 가리지 않고 식사를 많이 드셔야 변이 밀려 나오고

물도 자주 드시고 침대를 잡고 몸을 많이 움직여 보라고 해도 속수무책이다.

팩에 든 과일주스에는 변비해소를 돕는 성분을 넣었다고 심심할 때 물 대신 드시라고 해도 그냥 있다.

 

상훈님!

사모님이 특별히 생각하고 만들어 온 보조식품 오늘부터 꾸준히 드셔 보세요.

힘들게 일해서 상훈님 걱정돼서 해 오셨잖아요.

정성도 들었지만 맛도 엄청 있어요.

아락실과 함께 드시면 틀림없이 변비 해소 효과가 있을 거예요.

컵에 부어 쟁반에 받쳐 상 옆에 얌전히 놓아드렸다.

한참을 쳐다보다 "빨대 있어요?" 빨대를 요구하신다.

됐어!

가끔은 아락실 과립을 녹여서 드시기도 하고 그냥 드시기도 한다.

하루 세 번 꾸준히 준비를 해드리면 기분 좋게 드신다.

요즘은 원활히 변을 보아서 기분이 좋은 탓인지 가끔은 거실에서 퍼즐 게임도 하신다.

물론 손으로 제 자리에 끼워 넣지는 못해도 장소는 찾으며 함께 어울리는데 첫걸음을 내딛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여러 어르신을 모시는데 정도는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자는 것이다.

정성을 다 하다 보면 진심으로 섬기는 마음이 생길 테고

진심으로 하다 보면 정성은 저절로 묻어나는 것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은 상훈님께 물 한잔 주스 한잔이라도 정성을 들였다.

컵은 깨끗하게 씻고 받침 쟁반은 꼭 해서 공손히 준비를 해드렸다.

미리 준비했을 때는 컵 위를 덮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은 일이지만 정성이 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처럼 본인의 물건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셨는데 어렵게 마음을 열어주셨다.

사물함을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필요한 것 불필요한 것 일일이 알려주시며 관심을 보이더니 침대 위는 스스로 말끔히 정리를 하셨다.

이젠 어느 어르신 사물함이나 침대보다 정리가 잘 되어있다. 

"상훈님!

정리를 하니 공간도 많고 물건 찾기도 쉽고 좋지요? "

"예"

슬쩍 웃으신다.

20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