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라면 끓여드릴까요?

눈님* 2023. 7. 28. 22:00

2개월 만에 2층 근무를 하게 되었다.

변한 게 있다면 지난번 계시다 다른 곳으로 가셨던 어르신이 다시 와 계신 것이다.

집에 가겠다고 보따리를 싸서 엘리베이터 앞이나 계단 문 앞에 진을 치기도 하고

식사를 거부하시고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 많이 힘들었던 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에 가겠다는 소리는 않고 낮에는 계속 주무시거나 방바닥만 바라보고 계신다.

주위는 산만하다.

침대에 타월, 양말, 옷가지를 걸어놓고 이부자리나 옷도 어지럽게 놓여있다.

바닥에는 휴지통, 물병을 함께 두고 옆에 쪼그리고 앉아 계신다.

정리를 하려고 하니 그대로 가만히 두라고 조용한 목소리지만 손대지 말라는 경고를 하신다.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점심 가져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안 먹습니다."

"아침도 드시지 않았다는데 조금이라도 드세요."

"안 먹습니다."

"그럼 조금만 드시고 약이라도 드셔야지요?"

"약도 안 먹습니다."

난감하다. 전혀 통하지를 않는다.

"그러면 라면을 끓여올까요?"

......

"컵라면 있어요?"

"아니, 컵 라면은 없고 일반 라면이 있어요.

계란 넣고 파 송송 썰어 넣어 맛있게 끓여드릴게요, 김치도 곁들여서."

......

"예~"

너무 불지도 않고 오돌하지도 않게 정성을 다해 끓여왔다.

식탁을 거부하시고 굳이 방바닥에서 드시겠다고 하셔서 박카스 통을 판으로 대체해서 드렸다.

맛있게 드셨다.

저녁에는 비품실에서 작은 판을 가져와서 식판을 놓아드렸더니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식사를 잘하셨고 저녁에 보니 벽 모서리에 판을 붙여놓고 물병도 가즈런히 얹어놓으셨다.

내일은 예쁜 휴지통도 마련해드려야지.

마음을 열고 한 발씩 다가가면 닫힌 마음을 열어주실 거라고 믿으며.

 

201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