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적격자?
날씨가 흐리다.
회색빛 구름이 잔뜩 인상을 쓰며 여차하면 한줄기 쏟아질 기세다.
그래도 봄꽃들은 나름대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스스로 피고지고 제 역할에 충실하다.
심술궂은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일에 순응하는 순수함이 더 예쁘다.
오늘은 남자 어르신들의 목욕날이다.
이동이 자유스러운 분이면 별 힘 드는 일이 아니지만 몸의 일부가 마비가 되어 이동이 자유스럽지 못한 어르신의 경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새로 오신 윤XX 어르신은 좌측이 마비가 된 상태이고 더구나 성격이 까다롭고 눈에 물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난리가 난다고 한다.
특수 제작된 캡으로 이마를 가리고 해야 된다며 처음 보는 고무 캡을 할머니가 주셨다.
좌측 팔이 마비된 할아버지를 6년이나 수발을 하셨지만 이제는 할머니도 힘에 겨워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모시고 온 경우다.
지난 날 할아버지의 사랑이 대단해서 할머니가 원하는 일이면 하늘의 별이 아닌 것은 모두 다 해주셨다면서 할머니는 자꾸만 눈물바람이다.
움직임이 정상적인 어르신 2분, 휠체어에 의존하신 어르신 2분을 정성껏 씻겨 드렸다. 한 분은 감기 기운이 있어서 미루고 이제 걱정했던 새로 오신 어르신의 차례다.
조심조심 물의 온도가 맞느냐고 여쭤보며 시작해서 머리를 감을께요 신호를 드리고 얼굴에 물이 틔지 않게 이마에 한 손을 가리고 머리를 감긴다. 다음 얼굴을 조심스레 씻기고 재빨리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제거했다.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아이를 키울 때에도 눈에 물이 들어가서 불편해 할까봐 주의하며 씻기던 기억으로 지금 어르신들께도 그대로 한다.
긴장을 풀고 몸을 씻기면서도 불편한 몸의 부분에는 가능한 불안해 하시지 않도록 협조를 구하며 씻겨드렸는데 크게 걱정했던 것 외로 잘 끝났다. 더 기분이 좋은 것은 어르신의 표정이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목욕 도움을 드리면서 느끼는 일인데 우리 보호사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1.보호사의 흐르는 땀을 이해하지만 어르신의 보온과 인권의 차원에서도 목욕탕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
2.목욕 후에는 대형 타월로 몸을 감싸서 침대로 이동하고 옷을 입혔으면 좋겠다.
3.샤워기의 물은 어르신의 피부에 거부감 없을 정도로 온도와 세기를 알맞게 조절했으면 좋겠다.
4.두 사람이 동시에 빠른 속도로 씻기는 일은 가급적 피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표현은 할 수 없지만 내가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쾌하게 느끼는 일은 어르신들도 똑 같을 것이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인원으로 빠른 시간에 마치려고 하니 어쩔 수 없다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원장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새로 오신 어르신의 적응력이 어떻게 되는지 얘기가 나왔다.
새로 오신분의 까다로운 성격과 목욕 시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시지만 궁금해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원장님 크게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았어요."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기분 좋게 오전을 마무리 하고 많이 움직였는지 별 반찬은 없어도 꿀맛 같았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표현 못하시는 어르신들께 정성껏 도움을 드리게 됨에 감사하고
소박한 한 끼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식후의 커피 한잔에 감사한다.
"정 선생님!
조금 전 원장님께 그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목욕이 쉬웠어도 힘들게 했다고 해야 돼요."
식사 때 함께 했던 다른 직원의 충고다.
뒷통수가 전기에 충전된 듯 띵하다.
내 나이의 절반 밖에 살지 않았다는 30대 간호사다.
꿈이 많고 젊음이 재산이고 건전한 사고를 하고 실천을 하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할 나이에 이 무슨 황당한 충고일까?
마음이 답답하다.
지난번 다른 직원의 한 말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악의 없고 별 생각 없이 한 말이라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는데 이제야 답이 나왔다.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총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더 무서운 전쟁을 하고 있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는지 싶다.
내가 정말 말을 잘못한 것인가?
무조건 내 편인 남편에게 좌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또 충격이다.
당신이 맞긴 한데 가끔 답답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옆에 있으면서 받기 싫은 전화라서 없다고 하라고 하면 거짓말 못하고 슬그머니 바꾸어 주고 혼이 난 일이 한 예다.
직장에서는 함께 오너 흉도 보고 서로간의 뒷담화로 스트레스도 풀고 CCTV 없는 곳에서 농땡이도 치고 적당한 거짓말과 생색도 내고 해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열심히 해보았자 수혜를 받는 쪽에서는 표현도 못하고 다른 직원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동분서주 애를 써 봐도 말 하지 않으면 모르고 자칫 왕따 당하기 쉬우니 무슨 일이든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일도 편안하게 말 못하고 득실을 따져가며 대화를 해야 하는 현실이면 차라리 말문을 닫는 게 답일 것 같다.
더불어 살아가는 게 좋은 의미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는 게 더불어 사는 사회인가?
생각할수록 혼란만 가중되고 모든 게 실망스럽다.
이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인가?
작은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온 내가 진정으로 사회부적격자인가?
다음 날 나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리는 딸이기도 하지만 친구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인생을 더 깊이 있게 살아 왔는 사회의 선배 같은 마음으로 나를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기분 나쁘지 않게 순한 적응을 하게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좌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애고 그니까 지금까지 엄마가 얼마나 공주처럼 살았는지 아세요?"
밖에서 직장생활 2~3년만 해보면 그들이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알게 된다고 했다.
엄마는 요양보호사 일이 즐겁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풀 수 없는 이상한 관계, 같은 동료면서 비이성적이지만 그들 세계에서 통하는 상식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늦은 시간 아들이 전화를 했다.
"엄마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다면서요?"
"난 아마 사회부적격자인지도 모르겠다. 자꾸 혼란스러워."
좌초지종을 들은 아들은 조금 여유롭고 착하게 얘기를 해준다.
엄마는 전형적인 모범생스타일이다. 자신도 같은 스타일이라서 충분히 이해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지만 요양원 업무의 특성상 엄마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하는 바른 일이니 그냥 그대로 하세요.
하다가 계속 스트레스 받으면 그만 두라는 것이다.
가족의 따뜻한 위로와 충고 격려를 받을 수 있어서 난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생각이 다른 그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아 다행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현재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 나이에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더 넓은 마음을 가지도록 자신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음에 감사하자.
2013.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