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고마워요/변화의 자유

눈님* 2023. 7. 28. 14:02

KKH 어르신(97)

 

요양원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다.

97세인데도 허리가 꼿꼿하고 정신도 맑은 편이다.

지팡이를 짚고 매일 테라스를 산책하시며 햇살을 쬔다.

틀니로 소량이지만 식사도 잘 하시고 대소변도 정상이다.

단지 기저귀를 사용할 뿐이다.

기저귀를 갈고 난 후 팔다리를 잠시 주물러드리면 "고마워요" 꼭 기분 좋은 인사를 하신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불편함이 있으나 휴대폰으로 자녀들과의 대화는 된다는 것이다.

침상 머리맡에 휴대폰을 줄로 묶어 놓고 매일 충전을 해달라고 하신다.

기다리는 것은 예순이 넘은 막내딸, 칠순이 넘은 아들의 목소리다.

 

하루는 늦은 시간 잠자리를 보러갔더니 기분이 많이 좋으신 듯

"선생님 내가 시 한 수 읊어볼게요." 하신다.

특별한 기대 없이 네, 읇어보세요, 했더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뼈 빠지게 모은 재물

 

저승길 가는 길에

이고 갈까 지고 갈까

 

북망산 가는 길이

왜 이렇게 험난한가.

 

오호통재라~~~~

~~~~

몇 행이 더 있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르신 한번만 더 읊어보세요! 귀에 대고 조금 크게 말씀 드렸더니 어느새 잠이 드셨다.

 

기분이 좋으신 듯 며칠 동안 산책도 더 열심이시고 tv 시청도 하시는데 얼굴과 손에 부기가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음식을 짜게 드셨다.

간장종지가 항상 식판에 준비되어 있고 간장을 많이 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염분을 줄이기로 마음을 먹고 설득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잘 호응을 하신다.

"선생님 싱거워 맛이 없어요."

"그래도 건강 생각하셔서 간장을 드시지 않는 게 좋아요."

""

참 점잖으시고 옳은 말에 협조를 잘 해 주시니 그냥 고맙고 잘 모셔야겠다는 마음이 절로난다.

전 부터 허리가 좋지 않았는데 통증이 더 심하고 소변을 보기가 힘이 들고 아프다고 하신다.

부기도 더 심해지고,

연세가 많으니 전립선에 문제가 있다는 간호사의 말에 가족과 의논하여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일주일 후 요양원으로 돌아오신 어르신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얼굴과 손발이 붓고, 소변은 폴리를 차고 해결하신다.

말씀이 없어졌다.

가끔 돌아누워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기도 하고 식사와 약을 거부하신다.

자녀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어서 그러시는 거라고 오래 지켜본 직원들이 경험을 귀뜸해준다.

아들들은 아버님 연세가 있으니 수술 않고 그냥 계시라고 하고 딸은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수술을 시켜드려 아프지 않게 해드리자는 주장이니 자식들간에 의견충돌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부모에게 애틋한 마음은 딸이 훨씬 낫다며 딸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심한 식사 거부로 모두가 난감하다.

따님에게 연락해서 겨우 한 끼 식사를 해결했다.

다시 식사 거부로 여러 방법을 썼지만 효과가 없다.

밥 대신 영양식 캔을 준비했다.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렸더니 눈을 뜨셨다.

"어르신 한모금만 드세요."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또 한 모금

손을 맞잡고 또 한 모금

"선생님 자꾸 먹으면 토할 것 같아요."

"괜찮아요, 토 하세요, 닦아드릴게요."

아직 더 드셔야 약을 드실 텐데.

이번에는 얼굴에 뺨을 갖다 대었다.

얼마나 아프고 서러우시면 식사를 거부하실까.

자꾸 눈물이 날려고 한다.

"어르신, 제 성의를 생각해서 조금만 더 드세요."

뺨을 부비고 어깨를 안으며 진심을 다 했더니 또 몇 모금 드셨다.

캔의 2/3를 드셨다.

"어르신 고맙습니다."

많은 양의 알약을 잡숫고 편하게 눈을 감고 잠이 드셨다.

 

참 신기한 일은 나의 변화다.

이곳에 온 지 한달

예전의 까탈스러운 성격이 전혀 없어졌다.

어렵고 지저분하고 불쾌한 모습은 보는 것조차 괴로워하는 성격이었다.

지금은 그냥 가엽고 불편한 점은 어떻게라도 도와드리고

특히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루에도 큰 소리로 많이 웃을 수 있는 것도 어르신들의 덕이다.

늦게나마 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또 보람이 있어서 좋다.

 

201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