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의 시누이

눈님* 2023. 5. 20. 16:30

벨 소리야 깜짝 놀랐다.

어젯밤 수면이 부족했던 탓인지 책을 펼쳐놓고 졸고 있었다.

"언니야!"

"내일 별일 없으면 시간 비워둬라, 대구 간다."

시누이의 소리는 항상 밝고 높은 소리에 힘이 넘친다.

성격 탓인지 아니면 아직도 사회활동을 해서 그런지 아무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로 대화를 할 때는 목소리가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감정은 아주 크고 중요하다.

너무 침착하게 처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목청을 가다듬고 조금 높은 소리를 내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다.

 

시누이 남편은 예의가 바른 사람이다.

예의만 바른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선하고 좋은 사람이다.

이런 남편과 오래 살다 보니 시누이도 닮아졌다.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을 찾아뵙는 게 자연스럽지만 이미 돌아가셨으니...... 부모님 대신 윗사람께 인사드리는 게 쉽지는 않은데 이 부부는 자연스럽다.

편찮으신 시댁 작은 아버지를 찾아뵌 후 오빠를 만나자고 한다.

미리 도착하신 둘째 아주버님이 오늘 식사값을 내겠다고 하신다.

"아닙니다, 제가 낼 테니 다른 생각 마세요." 행동이 느린 남편이 미리 내기로 약속을 했다.

만날 때마다 시누이가 재빨리 계산을 하니 오기 전에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오빠 넷에 막내딸이니 얼마나 귀하고 예뻤을 여동생인데 요즘은 나이 든 오빠들 챙기기 바쁘다.

가끔 우리가 계산을 하려고 하면 '언니, 오빠들은 예전에  잘했다. 괜찮다'라는 시누이 소리는 한결같다.

 

시누이 부부는 오빠와 처남들의 식사 서빙에 바쁘다.

베풂이 몸에 배어있는 익숙한 솜씨가 복 받을 것 같다.

"고모야, 이제는 가게 그만두면 안 되겠나?"

작은 얼굴에 뽀얀 피부와 늘씬한 키, 세련된 매너와는 다르게 나이는 65세나 되었다.

창원서 백화점에 의류 브랜드를 몇십 년, 그만두고 집에서 쉬어보니 너무 무료하다며 다시 시작, 종합상가에서 의류를 판매를 지금껏 하고 있다. 수입은 별로 없지만 오랜 지인들과의 만남의 장소가 된 듯하다. 남편도 대기업, 중견기업 임원을 거쳤고 재산도 많이 일구어놓았다.

"조금만 기다려 봐, 제주도 살이를 해보고 전국을 돌며 1년씩 살아 볼 거다, 그때 놀러 오면 된다."

처녀시절 서점을 시작으로 결혼 후 계속 일을 한 탓에 쉽게 그만 두지를 못하는 것 같다.

오빠들 용돈, 분양받은 텃밭에 기른 각종 세척한 야채, 냉장 팩에는 생선, 두릅, 가죽 등 먹기 좋게 포장된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한 달은 넉넉히 먹을거리다.

"이건 언니 선물!"

 

식사값은 주문과 동시에 카운트로 달려간 남매의 힘겨루기에 동생이 이겼다.

통뼈를 자랑하는 남편이 밀렸다는데 말이 안 돼.

작은 고추가 맵다고, 내가 대신했더라면 어땠을까.

나오면서 알고 보니 계산대 사장님이 고모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우리 집안에서 고모를 이길 사람은 없어요, 대장이잖아요."라고 했더니

아하하하항~~ 시누이의 웃음소리는 변함이 없다.

"고모, 창원에 한번 내려갈게."

바이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