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15일 동안 나를 괴롭히던 실밥을 제거했다.
봄바람 같은 기분이다.
사랑니를 뽑으면서 가장 안쪽의 어금니 한 개를 뽑았던 자리에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50% 보조를 해준다니 좋긴 하다. 아직은 노인 소리 듣는 게 불편한데 노인 우대받을 때마다 국가공인 노인임을 확인받으니 노인이 맞는 것 같다.
기둥을 세우고 꿰맨 자리가 아무는 사이에 입안이 헐고, 찢어진 입꼬리는 아프고 남겨 둔 실밥은 입안에서 혀의 움직임에 따라 제멋대로 춤을 추고..
마지막 실밥 제거에 따끔해서 놀랐지만 입안이 자유롭다.
2개월 후 약속을 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바로 집으로 갈 수 없어!
버킷리스트 중에 내가 살았던 곳을 찾아가 보는 게 있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치과에서 버스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에 큰댁이 있었다.
지금은 과천으로 이사를 가고 없지만 시집오기 전 처음 인사를 갔던 곳이고 잠깐의 시집살이를 한 곳이기도 하다.
큰길보다 작은 골목길을 걸었다.
~~ 골목길 접어들 때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기분이 좋으면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골목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다. 예전에 달았던 문패는 보이지 않고 친절한 집 주소가 그 자리를 채웠다.
모양이 다른 대문과 집들, 자투리 땅이나 화분, 큼직한 그릇에 심어둔 귀여운 꽃이며 파릇파릇 싱그러운 야채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순간적으로 짙은 향기가 코로 확 들어온다.
라일락 향기다!
360도 휭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다.
뒷걸음으로 종종종~~ 좁은 골목 발견, 몇 집 지나 작은 화단에 라일락이 풍성하다.
작은 나무에 송이도 탐스럽고 향기는 짙어서 저절로 눈이 감긴다.
사람도 식물도 젊음의 향기는 신선하다.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예전에 살던 집에 가는 길이라고.
많이 궁금해하신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리기로 했는데 도착해서 보니 동네가 너무 초라하다.
재개발 지역이라 어수선하고 낯이 설다.
증조할아버지, 시어머님과 시누이가 살으셨고 형님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인데 사진을 보시면 기분이 어떠실까 살짝 망설여진다.
서울에서 대구로 전근을 왔을 때 잠시 살았던 한옥을 찾아보았다.
큰댁에서 조금 떨어진 곳(5분)에 위치한 큰집 소유의 집이었다.
비가 오면 마당에 지렁이가 나오는데 한 번은 신을 벗는 계단까지 올라왔다. 너무 놀라서 더 오르지 못하도록 근처에 소금을 뿌렸는데 지렁이가 꿈틀거렸다.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피웠던 기억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천장에는 쥐들이 들락날락~~ 부스럭 소리가 나면 귤을 천장을 향해 던져서 쥐가 놀라서 도망가도록 했다.
어린 남매도 엄마를 따라서 고사리 손으로 귤을 던졌지만 천장까지 닫는 일은 없었다.
만약 지금 다시 한옥에 산다면 지렁이와 마주치지 않도록 방도를 취하고 목가적인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을 더듬으며 근처를 몇 번 돌아도 살던 집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한옥들은 모두 없어지고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들로 새로운 동네로 변해있었다.
개발에 밀려 평생을 살았던 곳을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본다.
형님이 허리를 다쳐서 1년을 이곳에서 두 집 살림을 하며 시집살이를 했다.
4대가 함께 산 시댁 식구 8명, 우리 식구 4명 , 조카 셋 도시락, 서점 보기, 살림을 도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노동의 강도지만 그때는 칭찬에 홀려서 즐겁게 보낸 1년이었다.
그때 땄는 점수로 시댁이나 남편에게 지금껏 누리고 사는 행운을 얻었다.
서점 1
서점 맞은편 벽에는 밝은 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나무와 노인들의 휴식처를 얘기했더니 형님은 "거기 나무가 있었던가?" 돼 물어 신다.
서점 2 맞은편 공터의 작은 나무가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윗 사진)
42년 전의 자동차(브리사)
심인고등학교 운동장과 정원은 동네 어린이들의 놀이터
집은 없어지고 빛바랜 앨범에 사진만 몇 장 남았다/대문 위 장독대~새끼줄을 따라 오르고 있는 호박넝쿨
서점 2/시누이가 처녀시절을 보낸 서점
시어머님과 함께 다니던 성당시장 가는 길, 열려있는 정원이 좋아서 찰칵
모든 집의 정원을 열어두면 얼마나 좋을까.
조화인지 생화인지 구별이 쉽지 않지만 구석진 자투리에도 마음 씀이 예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