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언니/피는 물보다 진하다

눈님* 2023. 3. 23. 15:36

'피는 물보다 진하다'

나이가 들면서 옛 속담이나 격언에 짙은 공감을 하게 된다.

우리 자매들의 정은 참으로 끈끈하다.

돌아가신 큰 언니의 정성으로 그 연결의 끈은 늘 단단히 이어져 있었다.

지금은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탓으로 자주 볼 기회가 없지만 매일 전화로 안부를 전한다.

다행인 것은 대체로 건강을 유지하고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올케언니와 큰 조카가 불교에서 기독교로 改宗을 하고 신앙심이 깊어진 후로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음식은 다 갖추고 가족도 모두 모이지만 절은 선택적으로 하는 형식이었다. 

큰 언니는 부모님이 당당하게 제사상을 못 받는 일에 너무 상심해하셨지만 굳이 착한 올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며 묵인을 했다.

큰 언니가 돌아가시고 제사도 형식적이니 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가 않다.

재작년부터는 대구 셋째 언니 집에서 부산 넷째 언니와 함께 간단히 부모님을 기렸다.

소박하지만 제사를 매개로 자매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게 좋았다.

올케에게는 미안하지만 비밀로 하기로 했다. 알면 미안해할 것이고 마음도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올해는 서울에 사는 둘째 언니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뜻이 깊었다.

83세지만 정정하신 편이다.

첫째 날은 셋째 언니 집에서 제사를 모신 후 남편은 집으로 가고 네 자매는 새벽까지 소곤거렸다. 

지금의 얘기보다 옛이야기에 울컥하기도 하고 많이 웃었다.

평생 돈을 벌어서 생계를 도운 일이 없었지만 딸들에게는 영원한 아이돌인 멋진 아버지와의 추억이 가장 많다.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얼굴을 만져보기도 하며 애틋해했다.

내가 예쁜 동생들한테 더 많이 잘해주어야 되는데......

둘째 언니는 나이가 많아지니 여린 마음이 더 약해지는 것 같다.

봉투를 하나씩 주셨다.  작은 용돈을 얼마나 오래 모았을까. 언니 마음 편하라고 기쁘게 받았다.(거절을 하고 싶은데 셋째 언니가 말렸다. 받고 또 기회가 오면 드리면 된다고.)

 

오래전 엄마가 마지막으로 꽤 많은 돈(50만 원)이 든 봉투를 주신 기억이 난다.

"옛날에는 가난해서 좋은 옷을 입히지도 못했는데 이 돈은 다른데 쓰지 말고 꼭 좋은 고급옷을 사 입으라"라고 하셨다.

'고급옷'에 힘을 주었다.

엄마와 언니~~~

겹쳐진다.

 

엄마 기일 다음날은 셋째 언니 음력 생신이다.

아침 일찍 먼저 집으로 왔다.

전날 먹은 술 탓으로 약간 어질어질하지만 좋은 기분으로 견딜만하다.

올해는 내가 언니 생일상 차려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다행히 자매가 다 모일 수가 있어서 더 좋다.

며칠 전부터 밑반찬과 음식재료는 준비되어 있었지만 음식은 제시간에 따뜻함과 차가움이 유지되어야 제 맛이기에 바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상차림을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모셔두었던 요리 접시와 뚜껑이 있는 찬기를 꺼내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손녀, 사위, 며느리 등 가족 모두 내가 만든 갈비찜을 최고 맛이라고 좋아한다.

사람이 모이는 날이면 메인 요리는 늘 갈비찜이다.

 

우와!

"이게 바로 진수성찬이다." 조카의 칭찬에 으쓱해졌다.

갈비찜, 도토리묵무침, 해파리냉채, 오징어무침, 왕새우구이, 야채샐러드, 미역국 등 반찬.

어젯밤에 모두 술을 많이 먹은 탓에 맥주로 건배만 했다.

갈비가 최고 인기였지만 의외로 해파리냉채가 인기가 많았다. 다음에도 상차림에는 꼭 준비해야지.

도토리묵을 전자렌즈로 데워서 식혔더니 말랑하고 쫀득한 맛에 언니들이 비법을 묻기도 했다.

성공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케이크를 준비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생각을 못 했다.

 

언니들은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나 볼 수 있겠느냐는 말을 가끔 한다.

기회만 있으면 자주 보자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를 않는다.

다행인 것은 남편의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사람 많이 모여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뜻밖이다.

"역으로 언니 마중은 일 없는 사람이 가야지요" 했더니 자진해서 가겠다고 나섰다.

다음 날은 추운데도 밖에 나가서 처형들을 기다리기도 한다.

후훗!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남편의 이런 모습 처음 보니까.

며칠 동안 남편이 살갑게 하니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기쁜 마음이 배가 된다.

모두가 떠나고 조용한 집에서 차를 마시며 "편하게 해 줘서 고맙다."라는 진심을 전했다.

 

 

산울림님 작품/구례 산동 산수유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