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희망 선물/동네 책방

눈님* 2023. 1. 24. 16:38

설날!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빨간색 치마에 노란 색동저고리, 설날이나 추석이어야 입을 수 있는 떼떼옷이다. 

어머니는 설빔을 준비하시느라 호롱불 밝히며 여러 밤을 새우셨다. 자투리 색동천으로 예쁜 색동줌치(주머

니)도 만드셨는데 줌치를 묶는 끈은 손으로 비벼 꼬고 끝에 달린 부드러운 수술이 너무 예뻤다.

평소에 먹을 수 없는 푸짐한 음식도 설날을 기다리는 즐거움이었다.

조금 더 자라서 학교를 다니고 나서는 설빔보다 세뱃돈을 받는 기쁨이 더 컸다.

돈의 효용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사회인이 되어서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형제, 자매, 친지를 만나는 게 기뻤다.

이렇게 기다리던 설날이 결혼을 하고부터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제사와 많은 가족, 친지들이 모두 모이니 이부자리, 대청소, 음식 준비로 몇 날 전부터 슈퍼우먼이 되어야 했다.

주체는 큰댁이지만 형님이 바깥일을 하시니 시어머니와 둘이서 맡아야 했다.

어른이나 손 아래 많은 사람에게 선물이나 세뱃돈을 준비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지금껏 설날에 누렸던 호사(好事)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임을 결혼을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이제는 직계 가족만 모이니 단조로워서 집중하기에 너무 좋다.

자주 보지 못하는 내 아이들 독차지해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올해 설날은 조촐하게 보내기로 했다.

아들 부부만 내려오고 딸의 가족은 내려오지 않고 우리가 올라가기로 했다.

시댁으로 가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이사 준비로 많이 바쁘기도 하다.

가능한 젊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시간적, 물질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남편도  따라 박수를 친다.

아들과 며느리 모습에 너무 반가워 순간적으로 나온 격한 환영의 표현이었다.

아이고 어머니!!

(나라를 구하고 온 것도 아닌데 ㅎㅎ)

며느리의 경쾌한 웃음, 덧니가 더러 나도록 활짝 웃는 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좋은지~~

신발을 벗자마자, "지금 모습 너무 좋다. 이런 건 사진으로 남겨야 해."

휴대폰을 들여대니 둘이는 선한 포즈를 취해준다.

자식에 대한 오래전 기억에 머물러있는 엄마를 위한 최고의 배려일 것이다.

 

저녁은 일반 가족이 모였을 때의 상차림으로 준비했다.

갈비찜, 전, 묵무침, 오징어무침회, 샐러드, 파스타, 과일, 술은 와인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온 케이크와 전통 수제 약주(지란지교), 청주(초대)가 있어서 식탁이 더 어울린다.

 '지란지교'  '초대' 술 이름도 멋져.

격식 없는 분위기, 4명이니 발언권이 많이 주어져서 좋다.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며느리가 계획한 얘기에 눈이 번쩍! 가슴이 설렌다.

"오빠(아들)가 정년퇴직을 하면 2년쯤 쉬면서 건축에 관한 정보도 알아보고 노후에 필요한 집을 지어서 1층에 동네 책방을 차려줄 거예요."

"책을 좋아하니 원하는 책 마음대로 읽고 일이 있으면 문을 닫으면 돼요."

'오늘은 ~~~ 일로 쉽니다. '

사랑방 같은 동네 책방

"나도 거기에 함께 하면 안 될까?"

"그러면 너무 좋지요."

그때까지 살려면 건강관리 잘하고 품위 있게 나이 들어야 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카운터를 보는 책방'

호호할머니와 서점의 정경이 100세 시대에 어울릴 것 같고 카메라 세례를 받을지도 모른다.

현명하고 부지런한 며느리는 단기, 장기 계획을 이미 세웠으니 틀림없이 실천할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상상을 해보니 너무 멋질 것 같다.

설날의 가장 큰 '희망 선물'이다.

 

 

 

***짬짬이가 된 남편과 아들*** 

부산 여자(나와 며느리)들 부지런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며 디스를 한다.ㅎ

그러거나 말거나 너무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