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불 맹사성/공당 문답
맹사성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재상으로 호는 고불(古佛)이다.
황희 정승과 함께 조선 최고의 청백리 명재상으로 쌍벽을 이루며 추앙받는다.
27세인 고려 우왕 12년(1386)에 장원급제 하여 관직에 올랐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 개국으로 조부가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순절하고 부친은 출사하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맹사성도 관직을 그만두었으나 부친의 권유로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
조선조에 들어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고 세종대에는 좌의정까지 올랐다. 두 왕조를 섬겼지만 정치적인 갈등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태종 때 사헌부 대사헌으로 재임 중 역모 혐의를 받은 부마 조대림을 국문하다 왕실을 능멸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영의정 성석린과 황희, 하륜등 공신들의 간곡한 변호로 화를 면했다.
그는 음률에도 능해서 세종 때에는 박연과 함께 고려 시대의 음악을 정리했고
71세에는 아악보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소를 타고 옥피리 불기를 즐겨 했다는 낭만 가객이기도 한 고불 맹사성
성품이 온유하며 곧고, 청렴하여 늘 남루하게 입고 다니는 바람에 그가 정승인지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과 벌어진 일화가 많이 전해지는데 재미있고 그의 품성이 잘 나타난 공당 문답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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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맹사성이 고향에 다니러 왔다가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하룻밤을 주막에 묵게 되었다. 허름한 주막에는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여러 명 모여 각기 글재주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꽤나 부잣집 선비들인 모양이다.
한곳에 혼자 앉은 젊은 선비가 보였다. 그는 옷차림이 꼬장꼬장한 맹사성을 보며 약간 거들먹거리는 투로 "어이 노인네, 여기 와서 술이나 한잔하시오."
'이놈 봐라', 젊은 놈의 건방진 말투에 심기가 불편했다.
그래도 술을 권하는 따뜻한 마음이 갸륵해서 "그럽시다" 하고 합석을 했다.
글깨나 한다고 유세를 떠는 선비가 "우리 술이나 마시며 문답 놀이나 합시다"라고 하니 고불은 "그럽시다' 선뜻 응한다.
끝 글자 운을 '공'으로 물으면 끝 글자 운을 '당'으로 대답을 하겠소.
이렇게 공당 문답이 시작되었다.
"어디까지 가는 공?"
"한양까지 간당."
"한양에는 무얼 하러 가는 공?"
"과거 보러 간당."
"과거는 보아서 무얼 하려는 공?"
"백성들에게 하얀 쌀밥을 먹이려고 한당."
:
:
합격하도록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공?
싫당~~ㅎㅎㅎㅎㅎ
남루한 노인 주제에 가르쳐 줄게 뭐가 있다고 젊은 선비는 코웃음을 쳤다.
드디어 시험날
문필 시험이 끝나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젊은 선비의 차례가 왔다. 맹정승 앞에 엎드려 하문을 기다리는데 ~~~
"시험은 잘 치렀는공?"
깜짝 놀란 선비가 고개를 드니 주막에서 만났던 허름 한 행색의 노인이 앉아 있지를 않는가.
"죽을죄를 지었당."
맹정승은 미소를 띠며
"무슨 벼슬을 하고 싶은공?"
"녹사 벼슬하겠당."
"잘 하겠능공?"
"목숨 바쳐 하겠당."
맹사성의 풍류와 재치 그리고 소탈한 성품이 잘 보인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본 책에서 재미있게 본 일화다.
아무리 재미있는 얘기도 오래되면 잊어버리는 게 대부분인데 아련히 남아있는 내용도 있다.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책을 구하면 손녀에게 선물하려고 했지만 40여 년 전 책이라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때 아이들과 공당 놀이를 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재구성해 보았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도 좋다.
*두문동 72현은 역사(歷史)의 기록이 아니고 야사(野史)에 적힌 내용*
*녹사 벼슬;각급 관아에 속하여 기록에 관련된 일을 맡아보던 하급 실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