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친구
허무(虛無)하다.
어학사전에는 헛되고 무의미하다로 되어있다.
멍~
턱을 괴고 한참을 그냥 있다.
정자는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한 친구다.
신천변을 걷기도 하고 군것질거리를 담아서 앞산을 다니기도 했다.
꽃꽂이도 함께 배우며 가요방에 가서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성실한 천주교 신자로 수십 년 봉사활동으로 몸을 아끼지 않았다.
성당에서 여성 부회장 직책을 맡고부터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만남이 뜸했다.
며칠 전 전화가 와서 남편이 코로나로 돌아가셨고 삼우제를 지냈다며 담담히 얘기를 했다.
남편은 몸이 불편해서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지병이 있으니 이겨내지를 못했다고 한다.
쿵~
친구들이나 또래 친지들 중에 남편을 잃은 사람이 없다.
70대 초반이면 안타까운 나이인데......
서툴지만 진심으로 위로를 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주위 정리와 몸을 조금 추스른 후 어느 때나 시간을 내어서 만나자고 했다.
오늘 만나서 식사를 하고 차는 집에서 먹기로 했다.
잊어버렸다는 컴퓨터 사용도 다시 가르쳐 주고 텅 빈 집에 조금이라도 훈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집에는 나의 손을 그쳤는 흔적이 남아있다.
아들이 성공해서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내 일처럼 기뻤다.
필요한 집기나 부엌 용품은 대부분 내 취향에 맞춰 샀고 인테리어도 부엌 수납 정리도 나의 손을 그쳤다.
무조건 나를 신뢰하는 친구가 좋았고 둘이는 신바람이 났다.
그때의 그릇이나 소품들이 부엌 곳곳에 남아있는 게 좋았고 내 집처럼 편하다.
차를 마시며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는데 밝고 털털한 성격인데도 형용할 수 없는 서글픈 표정에 마음이 아린다.
"허전하다기보다 허무하다는 걸 느낀다"라고 한다.
허전하면 누가 무엇을 채워주면 되는데 허무함에는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야 돼.
언젠가 거짓말처럼 슬픔이 아물어질 테고
우리는 노후를 아름답고 당당하고 멋지게 보내자
힘이 들고 말할 상대가 필요하면 24시간 언제나 전화해라."
바래다주겠다며 우리 집 가까이까지 손잡고 걸어와서 헤어졌다.
친구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고 나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