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기쁨
나는 가끔 공상은 한다.
자유롭고 재미있고 소재도 무한하다.
만약 농부가 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진심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농작물에 애정을 쏟았을 것 같다.
수확에 감사하며 마음은 늘 풍요롭고 기쁨의 농사 일기를 빠지지 않고 썼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농부로 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흙과 함께 떼어놓을 수 없는 지렁이는 세상에서 제일 징그러운 존재라 공존할 수가 없다.
딱딱한 벌레는 그나마 나은데 흐물거리는 벌레들은 오싹 소름이 돋는다.
예전 전원주택에 살 때에는 정원에는 단감, 배, 석류나무 한 그루씩만 심고 잔디와 화초만 키웠다.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에도 실내와 베란다에 눈으로 즐기는 화초만 키웠다.
몇 년 전부터는 먹는 즐거움이 있는 채소와 과일을 키우면 더 재미있다는 올케언니의 권유를 받아 옥상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상추, 쑥갓, 치커리는 철이 지났고 방울토마토, 깻잎, 고추, 케일이 자라고 있다.
저절로 자란 방울토마토는 장난감 같은 텃밭에 영역을 넓혀가며 기세 등등하게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주렁주렁 빨간 알을 달고 있으니 저절로 왕의 대접을 하게 된다.
작년에도 한 그루 자라 예쁜 열매를 맺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따내지를 못하고 눈으로만 호사를 했다.
경험이 없어서 지주를 세우지 않고 방치했더니 토마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줄기가 찢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올해는 튼튼한 지주를 세워주었더니 무서운 비바람에도 잘 견디는 게 정말 대단해 보인다.
첫 수확을 할 때는 손도 마음도 기쁨에 떨렸다.
너무 익은 토마토는 당도는 높았지만 껍질이 질겼다.
다음에는 조금 덜 익은 상태로 따서 상온에서 숙성시켜 먹었는데 껍질은 부드러운데 당도가 낮았다.
이후로는 빨갛게 익으면 오래 두지 않고 바로 따서 먹었더니 와우~싱싱하고 껍질도 부드럽고 당도도 높아 최상급이다.
무슨 일을 하던 세심한 관찰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다시 느끼며..
아래층 할머니께 방울토마토와 깻잎을 조금 드리는 기쁨은 덤이다.
쑥갓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