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상한 아내

눈님* 2022. 7. 25. 17:33

''오늘부터 노래 부르기 연습해요."

"맨날 '고향 무정' 한 곡만 가지고, 그것도 박자 무시하고 부르면 인기 없어요. 조금 젊은 노래, 분위기에 맞고 재미있는 노래, 박자 음정 정확하게 부를 수 있는 곡 2~3곡은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순서 돌아오면 못한다며 시간 끌고 분위기 깨버리면 안 되고요."

이런 말을 대놓고 해도 남편은 기분 나쁜 내색이 없다.

얼굴은 화색이 돌고 약간 들떠있는 것 같다.

 

남편은 직장 퇴직 동우회에 다녀와서 다른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지금도 술과 담배를 많이 하고 실수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분위기를 맞춘다면서 무알콜을 준비해 갈 때도 있으니 사람 만나는 일에 유연하지 않고 세련되지 못한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완전 기분이 최상급!

여성들 몇 분이 처음으로 합석했다는 것.

오래전부터 퇴직 여성들도 모임 함께 하면 어떨까, 찬반이 갈렸는데 남편은 극구 반대였다.

나이 든 남자들이 취중에 내뱉는 정제되지 않는 말,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후배들이 함께 운동을 하고 바로 모임 장소로 와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점장님, 러브샷 해요.'

까마득 세월은 흘렀고 여행원들은 환갑을 넘었지만 그때 시절로 돌아가 어리광을 부리는 게 좋았나 보다.

지금 같으면 성추행으로 서로를 고발할 텐데, 그때는 최고의 동료애로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합석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분위기 화기애애, 쌍수 들고 앞장서서 앞으로 함께 하자는데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숙맥 같은 남편을 그냥 둘 수가 없다.

이왕이면 최대한 매력 있게 보일 수 있도록 기본을 갖춰야 한다.

 

추억 소환

30여 년 전 일이다.

남편이 친구들과 가끔 가는 룸살롱이 있었다.

최고급은 아니고 여성들 몇몇이 자금을 모아 공동으로 운영하는 비교적 소박한 곳이었다.

남편이 술을 하면 으레 기사 노릇을 즐겨 하던 때이다.

그날도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후배가 나오더니 자꾸 올라가자고 한다.

큰길에서 술 취한 남성이 형수님, 부르며 소리를 치니 창피해서 재빨리 올라갔더니 벌써 남편은 취해 있었다.

주책없이 노래 한곡 부르라고 떼를 쓰고 모두들 재촉하는 바람에 마이크를 잡았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바암을~~

'동백 아가씨'를 불렀는데 진짜로 동백 아가씨의 가사에 제대로 푹 빠졌다.

어머나! 이미자 목소리보다 더 구성지고 트롯의 꺾기도 내가 더 잘하는 것 같아. 

마이크 탓인가?

앵콜~~~모두들 난리가 났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파트너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우리 남편 이런데 와서 춤도 노래도 못하고 재미도 없는데 함께해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도 오시면 잘 부탁한다."

진심이었다.

 

 친구들에게 그날 있었던 얘기를 했더니 평이 달랐다.

"너 아주 고차원이다."

"그 아가씨 너무 놀랐겠다."

"너는 가끔 이상한 짓 하는 게 조금 모자라는 애 같다."

 

우리 집 베란다에 핀 별수국

 

 산울림님의 블로그에서 모셔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