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라일락에 취한 날

눈님* 2022. 4. 9. 02:10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이득타 기약이 없네~~

개나리 목련은 하나 둘 떨어지고 벚꽃이 눈이 부신다.

격리 중이라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베란다에서, 옥상으로 나가서 앞산에 핀 산벚꽃을 본다.

멀리 산 아래 응달진 곳의 고목이 된 아름드리 목련나무에는 아직도 꽃이 절정이다.

까마득하게 아래로 보이는 아파트 도로변은 하얀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아름다움을 카메라로 담는 사람의 모습도 가끔 보인다.

햇볕을 잘 받은 담벼락의 울타리 개나리는 꽃이 떨어짐과 동시에 파릇파릇 잎이 뾰쪽뾰쪽 입술을 내밀고 있다.

               ***

잔인했던 3월~~~4월도 계속된다.

여느 해처럼 봄의 잔치는 이곳저곳 어디에서나 한창인데 나만 쓸쓸한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봄꽃들을 볼 수가 없는데 더 나른하고 게을러진다.

장기간 비대면 아니면 격리 상태의 후유증인가?

며칠 전 은행에서 정기예금 만기가 지났다고 연락이 왔다. 

격리 해제가 끝나자마자 미루었던 은행 볼 일로 모자를 깊이 쓰고 집을 나섰다.

봄 햇살도 싫고 꾸미는 것도 귀찮아서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땅만 보고 터벅터벅 걷는 모습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걸음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땅만 보고 걷고 있는 나의 눈에 웬 보석이!

길바닥에는 落下한 벚꽃이 만든 꽃길~~

꽃보다 더 멋스럽다.

기분이 조금 나아져서 모자챙을 접어 올리니 하나 둘 꽃비가 내리고 있다.

거친 봄바람에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서 얄밉지만 꽃비를 선물해 주니 용서해 주자.

가는 길, 울타리 곳곳의 나무와 꽃들은 봄의 기운이 넘쳐난다.

이게 뭐지? 

벌써 라일락이 피었잖아.

연보라색이네.

이건 찍어야 해!

카메라에 담았다.

라일락 꽃으로 마음이 밝아지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봄길을 걸은 날.

 

우리들의 이야기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를 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비가 좋아 빗속을 거닐었고 눈이 좋아 눈길을 걸었소

사람 없는 찻집에 마주 앉아 밤늦도록 낙서도 했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