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돈이란/가깝고도 먼 사이

눈님* 2022. 2. 26. 01:48

눈님 홈페이지는 하루하루 남기고 싶은 일을 소복하게 쌓아놓는 보물창고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소재도 고갈되고 같은 일을 계속 쓰려니 식상하기도 하다. 

이곳에는 취미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다양해서 많은 볼거리, 화잿거리가 넘치니 눈 호강, 입 호강, 마음의 양식을 두루 섭취하는 호사를 편하게 누린다. 

그분들의 일상을 엿보면서 공감과 배움, 느낌과 감사를 하며 가끔은 자료를 살짝 커닝해서 소재를 삼아 보기도 한다. 

오늘은 사돈에 대해서 적어보자. 

 

처음 사돈을 만난 것은 상견례 날이었다.

평소 딸은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딸은 "엄마가 꼭 결혼시키고 싶으면 예쁜 아기옷 파는 곳을 구경시켜 주세요"라고 했다.

그런 딸이 어느 날 남자 친구라며 집으로 데리고 왔고 보는 순간 마음에 쏙 들었다.

준수한 외모도 좋았지만 대화를 해보니 반듯한 성품은 더 좋았다.

마음 변하기 전에 서둘려 상견례 날짜를 잡은 것이다.

 

한때는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고 했던 63 빌딩에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니 설렘과 긴장은 당연. 

다행히 사돈 되시는 분이 연세가 더 있고 인상이 푸근해서 금방 친근해졌다.

다른 사람은 연세가 많으면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는 오히려 푸근해진다.

주위에 온통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 익숙한 탓이리라.

양가 집에서는 내 자식이 금쪽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하니 둘 다 금쪽이라는데 공감하며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나오면서 안사돈 될 분의 손을 살짝 잡았다.

"언니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이 불쑥 나오며 손을 잡는 게 푼수 같았는 것 아닌가 순간 생각이 들었지만 진심이었다.

다정하게 앞서 걷는 걸 보더니 뒤에서 "우리도 손 잡읍시다" 두 남자도 손을 잡았다.

누구 소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헤어지는 아쉬움의 여세를 몰아 여의도 공원으로 GO!

야외에서 차를 마셨다.

상견례 후에 이렇게 스스럼없이 공원에서 2차를 즐기는 사람은 우리뿐일 거라며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결혼 후 딸의 첫 생일날 다시 만나게 되었다.

새벽부터 수산시장에 가셔서 싱싱한 장어를 사고 겉절이, 양념을 비롯한 필요한 모든 재료를 준비해 오셨다.

그 무게가 젊은 사람이 양손으로 들어도 힘이 들 정도였으니 두 분에게는 무리였다.

솜씨 좋으신 안사돈의 요리 실력은 프로급이다.

시아버지는 제일 먼저 구운 장어를 맛있게 싸서 며느리에게 먹여주시는 걸 보니 너무 고마웠다. 내 딸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태어나서 장어를 그렇게 많이 먹기도 처음이었다. 

시집 식구들은 미식가라 엥겔지수가 높다는 딸의 귀띔에 웃었다.

먹는 걸 소홀히 하는 우리 집과는 대조적이다.

 

서울, 대구에 떨어져 사는 이유도 있지만 가끔 서울 가도 사돈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바쁜 아이들과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결코 편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 후 한 번 식사를 더 하고는 함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바깥사돈이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술을 좋아하셨지만 건강에는 자신 있다고 하셨는데.

늦게 알게 된 게 원인이다.

사위는 외국 공연 중이라 딸이 집으로 모시고 와서 병원을 다니기를 1달 정도. 

아들 셋에 딸이 없던 관계로 며느리를 딸처럼 너무 좋아하셨다.

눈에 미끄러질까 봐 미끄럼 방지 부츠를 사다주시고 늦은 귀가에는 친정 부모보다 더 걱정하시고 시집에서 설거지라도 하면 일 시키려고 며느리 봤냐며 시어머니를 호통치시는 간 큰 독재자셨다.

결혼 전에 딸을 한번 보시고는 아들에게 아내로 맞이하지 못할 거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말라는 엄포도 놓으셨다는 일화도 있다.

무한한 사랑을 주신 시아버지를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진심을 다해서 보살펴드린 딸, 제일 많이 슬퍼했다. 

 

지금도 안사돈은 가끔 전화를 하신다.

미안해서 다음엔 제가 먼저 할게요 하면서도 먼저 전화를 하게 되지 않는다.

누구는 어떻고, 아무 관심 없는 사람들의 얘기로 끝이 없지만 "예, 예" 대답만 하면 된다.

전형적인 노인이란 생각이 들 때는 우리 언니들 생각을 한다.

서울 올라오면 맛집에도 가고 함께 놀려 다니자고.

"예"

역시 

사돈은 가깝고도 먼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