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삼국지~삼천포로 빠져버렸다

눈님* 2022. 2. 12. 12:33

새벽 2시 15분, 삼국지 마지막 10권째를 다 읽었다. 

허전하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설을 전후해서 책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 외 날은 최소한의 생활 외에는 집중했다.

시력 나빠진다는 남편의 염려를 뒤에 두고 자다가도 살그머니 일어나서 알게 모르게 눈치껏 푹 빠졌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침대 커버 속에 어린이 삼국지를 숨겨놓고 보고 또 보던 기분을 이 나이에 이해하게 된다. 

삼국지는 젊은이들에게는 용기와 포부, 지혜와 사려를 깊게 하기 때문에 읽기를 권하나 나이가 들어서는 잔꾀만 더 늘어난다고 보지 말라는 필자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 같다.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가 지혜로운 것도, 사려가 깊은 것도 아니고 지나친 권모술수나 잔꾀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깨우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역사에 기반을 두었지만 소설적인 재미를 더하기 위해 허황된 전설이나 설화, 지나친 영웅들의 신격화된 무용담, 부풀린 군사들의 숫자와 교묘한 전략 등을 보면 허세인 줄 알면서도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지역이나 인물, 사건이 너무 방대해서 머리에 입력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보기로 했지만 감정은 그 시대와 인물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에 사람마다 좋아하는 취향이 다를 수 있는데 난 조자룡이 제일 마음에 든다.

조자룡

준수한 외모에 뛰어난 무예는 기본이고 충성심과 의리, 묵묵하게 맡은 일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용기와 자세심......

조자룡의 죽음에 찐한 눈물을 흘렸다.

 

유비

대의명분을 중요시하고 인재 발탁을 위한 삼고초려, 남을 포용하고 덕을 베푸는 너그러움 등 좋은 면이 많지만 우유부단하고 답답함이 있었다.

 

조조

어느 권력자나 마찬가지로 초심을 잃고 직권을 남용하였지만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훌륭하고 멋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적이라도 주군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이 있거나 의리가 있는 자는 끝까지 존중하며 회유를 하고 그래도 되지 않을 때는 죽였지만 최고의 예를 지켰다. 반면에 일신의 이득을 위해 주군을 배신하고 자기에게 대승을 거두게 해 주어도 심하게 꾸짖고 목을 쳐서 배신자의 최후가 어떤가를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적의 장수로 잡은 관우를 예우하며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겨 온갖 부귀영화로 회유해도 소용없고 생사불명인 유비 생각으로 우울해하는 관우를 위해 여포에게 뺏은 적토마까지 선물. 유비를 찾아 떠나는 관우를 잡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눈물을 흘림. 그 후 조조가 패해서 도망가는 위험에 처했을 때 관우가 뒤쫓지 않고 날려 보내줌. 

내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고 배신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 성격 탓인지 모르겠다.

 

관우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가장 멋있는 남자라 생각했다. 

큰 키에 긴 수염 날리며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로 위엄을 갖춘 사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전장에 나가면 무적이라 가장 믿을 수 있는 장수에는 변함이 없지만 자만심에 아까운 목숨을 잃은 것이 너무 허망했다.

 

장비는

미안하지만 제일 싫어하는 타입

무식하면 용감하고, 사기꾼이 부지런하면 큰일이고~~

 

제갈공명

유비의 책사로 뛰어난 지략과 전략으로 촉한 건국의 일등공신이며 유비 사후까지 그의 유언을 수행하는 충절은 눈물겹다.  실패로 끝을 맺었지만 수많은 전투에서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책략은 욕심이 난다.

상대의 전략까지 몇 수를 내다보고 촘촘한 그물을 엮어 결국은 승리로 이끌어내는 그의 책략을 현재 우리의 사회 문제에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 십 번의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었지만 결국은 실패했고 정권조차 내어놓아야 할 형편이다.

정권이 문제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계층 간의 갈등, 젊은이들의 결혼도 인구 절벽도 해결이 되지를 않는다. 

공급 부족과 유동성이 문제고 세계적으로 부동산이 폭등했다는 말로는 화난 국민들의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무엇이던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이해하기보다 결과에 분노하는 게 보편적이다.

대통령의 부동산 문제 해결의 확실한 의지가 있다면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자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그들은 대부분 기득권자들로서 자신들의 부가 줄어들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탁상공론에 말과 행동이 다르다.

큰 가지를 치면 곁가지들은 저절로 죽을 텐데 잔가지만 자꾸 쳐봤자 다시 자란다.

빠져나갈 길부터 막지도 않고 바람부터 일으키니 회오리바람을 어떻게 잡을 수 있나?

부동산 꾼들에게 맡겨보라.

그들에게 명예를 주면 된다.

부동산 투기 경험자들로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길을 귀신보다 더 잘 안다.

막을 길과 열어줄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괄공명에 빠지다 보니 평소 답답하게 생각하던 부동산 문제가 떠올라서 잠시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여명이 밝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