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전화
요즘은 독서 삼매경에 푹 빠졌다.
넷째 언니가 가져다준 삼국지 덕에 더 심한 야행성으로 바뀌어버렸다.
낮에도 시간 나는 대로 짬짬이 보지만 집중은 밤이 훨씬 낫다.
낮에 책을 볼 때는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둔다.
광고성 필요 없는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오기 때문에.
벨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건망증인지 진동으로 바꾸지 않았음에 약간의 짜증이 났다. 그런데 반가운 이름이 화면에 떴다.
강미라!
오랜 시간 보지는 않았지만 잊지는 않고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이름이다.
좋은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만나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마력이 있다.
우리의 만남은 미라가 30대 내가 40대였으니 여자로서 가장 아름다울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10살 차이었지만 전혀 거리감이 없었다.
서울 사람이었는데 남편의 직장이 대구로 발령이 나서 임시로 오게 된 것이다.
이웃 동네 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부부가 너무 선하고 싹싹해서 우리 가족과 가끔 어울렸는데 그녀의 남편은 분위기 잘 맞추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형님 제가 약장수 아닙니까."
ㅇㅇ약품 대구지점 지점장이었는데 스스로를 약장수라며 재롱을 떨었다.
사람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그들 가족과 만남은 좋아했다.
미라는 객지니까 특별히 만날 사람도 없으니 함께 운동을 하게 되었다.
다른 2명과 함께 네 명이 조를 맞추어 매일 연습장에서 운동도 하고 퍼블릭 코스에서 어설픈 샷도 날리고, 식사도 하고 가끔 술도 마시며 재미있게 보냈다.
미라는 대구가 좋다며 아예 살고 싶다고 했다.
4명의 성격이 모두 달랐지만 미라가 가장 젊고 예쁘고 늘씬하고 성격도 좋았다.
제일 연장자는 너무 바르고 올곧아서 선생님 같았고 난 그때만 해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순진 파였고 바로 아래는 세상만사 경험자로 남자 같았다.
이런 조합이 상상 외로 잘 어울리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셋째였다.
나를 많이 괴롭혔다.
무엇이든 필요하면 날 보고 준비하게 하고 운전도 나에게 미루고 여러 사람에게 커피를 선심 쓰고는 돈은 날 보고 계산하라고 한다.
커피 한 잔에 1500원이면 10명이면 얼마냐.
여러 번 그러니 기분 나빠서 소심하게 따졌다. 생색은 네가 내고 돈은 왜 날 보고 내라고 하냐?
그런데 대답이 억지다.
"언니니까 돈을 내야지."
"그럼 나보다 더 위에 언니도 있잖아."
사나와진 지금 같으면 어림 반푼 어치도 없을 것이다.
"언니, 착하고 예쁜 우리가 참자."
나 다음으로 많이 당하는 미라가 한 말이다.
미라는 얼굴만큼이나 말도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예쁜 사람에게 예쁘다고 하면 큰 감동이 없지만 예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용서된다.
그 시절 생각하면 지금도 약장수, 예쁨, 미라 이런 연상어가 떠올라 웃는다.
너무 반가워서 두서없이 서로 궁금함을 물었다.
아이들이 대학 다닐 때, 딸 결혼식 때 서울서 만난 후 전화만 몇 번 한 것이 전부였다.
서울 가서 무용 학원을 하다가 그만둔 일, 유치원 아이들이 자라서 20~30대가 되었고 자립해서 비혼 주의자로 산다는 얘기, 남편들의 안부 등 1시간을 통화했지만 끝이 날 줄 몰랐다.
다음에 서울 가면 꼭 연락하기로 하고 그러면 남편과 바람같이 달려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끊었다.
예기치 않은 일로 행복한 날,
미라야 잊지 않아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