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말이라도 잘 들어주니 데리고 살지
"음식물 쓰레기 가져와라."
"나는 아내 말도 잘 듣지 않는데 이거라도 잘해야지."
겨울의 옥상 텃밭에 퇴비를 만들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를 흙 속에 묻는 일은 남편 몫이다.
갑작스러운 남편 말에 웃음이 터졌다.
"자기는 힘은 없지만 배도 나오지 않고 코도 골지 않고 방귀도 뀌지 않고 많이 ㅊ먹지도 않는데..ㅎㅎㅎ"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수습이 안된다.
주부들 사이에 쌓인 스트레스를 푸느라 많이 하는 소리지만 선거철 특별한 사람의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코미디의 한 대사 같다.
지금껏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거를 치르고 투표를 했지만 이번처럼 막막한 적은 없었든 것 같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봐야 소용없다"
'창과 방패'
유권자들이 좋아할 간결한 문장, 대단한 힘이 느껴진다.
많은 구호가 있었지만 머리에 남아있고 지금 시점에도 딱 맞는 것 같다.
자유당 시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 씨의 구호에 자유당에서 맞받아친 구호로 기억된다.
지금은 안보, 외교 등 일부만 차이를 보일뿐 대부분 공약이 비슷하니 진보와 보수의 한계도 흐려지고 극좌와 극우, 어정쩡한 중도만 있는 것 같다.
갈아봐야 소용없다고 하는 쪽은 현 정권과 정권교체를 하고 싶지만 MB, 박근혜 정권의 실상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기억하는 50년 전후, 특히 대통령 선거는 전쟁이었지만 좋은 기억도 많다.
각인각색의 후보들은 좋은 구호를 앞세우고 사활을 건 전쟁을 치렀다.
후보가 의문의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권력기관들의 불법 선거운동이 암암리에 있었다. 그래도 유권자들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것 같은 후보를 후원하고 유세 현장까지 달려가서 열정적으로 지지와 환호를 했다.
돈이나 물품을 뿌리고 상대방을 모함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등 혼탁한 선거였지만 그래도 낭만은 있었다.
산업화, 민주화의 열풍 속에 특별한 취미나 축제가 없는 유권자들은 미미한 내가 한 표를 던져 대표를 뽑을 수 있다는 행복함에 들떠기도 하던 시절.
대부분 가족 단위로 지지하는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주로 산업화와 민주화에 초점이 맞추어졌는데 보수와 진보로 대신할 수 있겠다.
그런 시기를 지나 부모의 영향은 없어졌다.
각자 지지하는 사람을 선택했고 누구의 간섭도 싫어했다.
지방에 사는 부모가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딸 투표하러 불렀는데 엉뚱한 사람에게 투표를 했다니 용돈 주고 차비를 주며 부탁했는데도 이제는 부모 말도 안 듣는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어느 날부터 부부간에도 의견 차이로 다투고 남과도 반목하는 일이 허다하게 되어버렸다.
차라리 선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오늘도 인터넷이나 신문, 방송은 불쾌한 선거 뉴스만 도배를 하고 있다.
이젠 알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지만 눈과 귀가 있으니 외면하기가 싶지 않다.
선거는 무조건 이기는 게 목적이라지만 유권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하얀 머리 휘날리며 경상도 사투리로 열변을 토하던 YS 유세장을 찾던,
바보 노무현을 사랑하던 시절은 가버렸지만 당당하게 누구를 지지한다고 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