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관계
정우야 잘 지내니?
나도 큰일은 지나가고 지금은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이제 미루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를 하려는데 너와의 관계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
그만큼 너와 나 마지막 통화 이후 마음앓이를 했기 때문이다.
만남과 이별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다시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정 같은 건 주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너를 만나고 그 다짐은 깨어져버렸지.
네가 세상에 물들지 않았고 나를 순수한 마음에서 바라봐주는 마음이 좋았어.
동생이 없었기 때문에 12살 아래인 너를 진심으로 동생같이 생각했지.
사회와 인생을 조금 더 살았는 연장자로서 칭찬과 격려와 때로는 독한 훈계로 너의 삶에 관여를 했는 것 같아.
"언니를 일찍 만났더라면 내가 조금 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언니가 무슨 일이나 말을 하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나를 무한히 신뢰하고 세상의 누구보다 나를 좋아해 준 네가 고마웠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소원한 사이가 되어버렸네.
함께 일을 할 때는 이야기들이 무진장 많았는데 일을 그만 두니 공유하는 일이 별로 없고 할 말이 없으니 애꿎은 남편 흉만 실컷 했지.
그리고 대화에서 세대 차이, 금주, 이사, 집전화 폐기, 남편의 집콕 등이 이유가 되지만 집 전화 폐기가 젤 큰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돼.
집 전화가 있었다면 네가 하지 않아도 내가 또 전화하지 않는다며 화를 내며 전화를 하곤 했을 텐데.
어떤 인연으로 만났던 얼굴도 보지 않고 전화 한 통화로 끝이 난다는 건 너무 아프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지만 그래도 너와 함께 일을 할 때의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보낸 메일을 확인해 보니 120여 개가 되더라.
사회생활의 초보자인 너에게 진심을 담아 걱정하고 격려를 하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며 너의 요양원 적응을 위한 글들이 지 금 내가 읽어도 감동이었어.
지금 누구를 위해서 그러라고 하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진심이 담긴 그런 글은 쓸 수가 없을 거다.
그동안 아들 결혼식 전 후 바쁜 일정이 있었고 언니 때문에 너무 힘이 들었다.
언니 집 수리는 작년에 마쳤는데 이쪽 집이 세가 나가지를 않아서 1년을 견뎠고,
다시 1년이 되었는데 또 기약 없이 미루며 미안해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법대로 하라며 억지를 부리고
언니를 무시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얻은 집이고 언니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남편 눈치를 보며 언니 일에 매달리다 보니 다른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너에게 최선을 다하고 어르신들 모실 때 최선을 다하던 성격대로 언니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악마 같은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차 했으면 육탄전까지 갈 뻔하기도 했으니 세상에 지옥과 악마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너무 불안해해서 병날까 봐 일부만 받고 전세가 나가면 나머지 받기로 하고 이사를 했다.
부산 언니들도 다녀가고 언니도 이젠 새 집에 정을 붙이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어.
나도 어려운 숙제를 다 했다는 뿌듯함과 이제 나머지 시간은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는 내 입장과 생각이었고 너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니?
마지막 전화에서 네가 했는 말 중에 하나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더라.
오해된 부분이 있으면 솔직하게 풀고 서운했던 일이 있으면 얘기를 하자.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데, 이렇게 허무하고 찝찝하게 헤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이별을 해도 후회가 없도록 멋있게 하자.
코로나 때문에 만나기 쉽지는 않을 테지만 해가 가기 전에 만났으면 좋겠다.
어려우면 미루어도 되고.
난 백신 3회 접종을 마쳤는데 넌 맞았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조심하고~~
언니 미안해요,
내 건강 때문이에요.
꽁보리밥 먹고 매일 뒷산에 올라가고 늘 피곤해요.
당뇨 걸리고는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졌어요.
10년은 늙은 것 같아요.
언니는 잘못 없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 중에 사람 관계도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쳐 마음을 쓰지 못했던 분들, 마음에 거리를 둔 사람들에게 하루 시간을 내어서 통화를 했다.
마음이 여리고 수동적이고 청력이 좋지 않은 정우에게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모두들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많이 웃을 수 있었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기분도 좋다.
손을 먼저 내미는 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란 걸 또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