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
주말부부인 아들과 며느리는 늘 바쁘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그들만의 사는 방식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아들은 금요일 저녁이면 대전으로 내려와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올라가니 얼마나 피곤할까, 청춘도 아닌데......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꽤 괜찮아 보이기도 하다.
5일 동안 각자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주말에 만나면 반갑고 할 얘기도 많을 것이고 더 애틋할 것 같고 혹시 서운한 일이 있어도 시간이 아까워 이해를 하던지 아니면 참을 것 같다.
결혼을 한지 꽤 지났건만 며느리가 살고 있는 곳에 가 보지를 못했다.
생각보다 할 일이 너무 많기도 하고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사는 게 궁금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예전에는 대전이라면 우리나라 4번째 큰 도시라 했는데 지금은 순위에서 많이 밀렸고 먼저 떠오르는 게 대전 블루스다.안정애, 조용필, 장사익 님이 불렀는데 개인적으로 장사익 님의 소리를 좋아한다.
지금은 먼저 떠오르는 게 대덕연구단지, 카이스트 정도다.
몇 년 전 서울 친구와 대전에서 만나서 세종시 종합청사와 세종 호수를 구경하고 동학사를 들렸는 게 유일하다.
대전역은 생각보다 넓었다.
내리기 전 열차 문 유리창 너머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이 보였다.
플랫폼의 열차가 서는 정확한 위치에 서 있었다.
혼자 웃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모범생들이라서 그런가 ㅎㅎ
하늘이 뿌옇다.
미세먼지가 심하다.
처음 들어가 보는 카이스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수재들이 모여있는 이곳에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내 며느리라니 뿌듯했다.
내가 배움이 짧으니 며느리는 학벌이 좋고 똑똑하고 착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는데 꿈은 이루어졌다.
착하다기보다는 현명하고 부지런하고 상냥한 편이다.
끝없이 넓은 교정과 건물들을 지나 교수 아파트가 있었다.
외국인 교수 아파트는 꽤 넓었다.
관리를 하는데 힘이 들 것 같았는데 넓은 공간을 선호하는 취향에 맞나 보다.
실내 인테리어를 보니 흥미로웠다.
가구 배치도 그렇지만 소품들이 재미있고 특이했다.
전공과 관계있는 우주선에 관한 네고 블록 작품들이 눈에 띈다. 주말에 만나면 둘이서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우주에 관한 영화 포스트들도 벽 한 면을 장식해놓았다.
60여 년 전 기억이다.
명절이나 큰 행사가 있으면 엄마와 언니들은 기왓장을 곱게 빻은 가루로 놋그릇을 닦아서 햇빛에 비추며 반짝이던 기억이 있다.
놋그릇은 무겁기도 하지만 금세 색깔이 변하여 사용하기가 불편한데 양은이나 스테인리스 같이 실용적인 주방 그릇이 나오면서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요즘은 냉면 집에 가면 유기농 놋그릇을 쓰기도 하고 고급 궁중요리 전문집에 가도 사용하는 걸 본다.
그리고 혼수로 유기농 놋그릇이 유행이라는데 나는 권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한식 요리 전문가들이 더 한국적인, 더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니 그런 현상이 일어나나 보다.
며느리도 유기농 놋그릇을 갖고 왔다니 이번에 정식으로 먹어볼 기회라며 은근 기대를 했다.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큰 법.
양식 테이블 세팅에 즉석 한우 구이~~
바쁜 딸을 생각해서 사돈이 한우와 몇 가지 요리를 택배로 부쳤다는 것.
다음 날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를 않았다.
연구실은 공사 중이어서 다음에 보기로 하고 사진만 몇 장 찍었다.
졸업 예정인 학생과 부모들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곳곳에서 함께 사진 찍는 모습들이 보인다.
아버지가 최고로 맛있는 것 사 줄 테니 가자고 했더니 유명한 곰탕집으로 안내했다.
수육은 대구와 다르게 뜨거운 쇠판에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서 부추 위에 갖가지 수육을 얹었는데 쫀득한 게 진짜로 맛있었다.
이쪽 동네는 단독 집이나 상가 건물이 특이했다.
외국의 느낌도 나고 조금은 한가롭고 예뻤다.
분위기가 좋아서 가끔 갔다는 카페에서 네 사람 각기 다른 차를 마셨다.
생강차 블루베리 페퍼민트 커피
두서없이 다투어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다음 볼 일은 미루고 역으로 급히 달렸다.
위드 코로나로 가는 곳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도로에는 차가 많이 막혔다.
구도시라 생각보다 도로가 좁은데 거기에 도로 양면에 불법 주차까지~~
다행히 차를 탈 수 있었는데 어제 잠을 설쳤는 탓으로 동대구 도착될 때까지 자버렸다.
집에 오니 너무 편안하다.
몸도 나른
마음도 나른
아!
좋다.
누군가 그랬다.
이제는 나이 듦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바쁘고 힘들게 사는 내 자식들과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남기고 싶다.
젊어서 열정적이고 치열하고 성실하게, 하잘것없는 일이라도 자기 일을 즐기며 자기 삶을 살아온 사람은
나이 들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행동이 느려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얼굴은 주름져 일그러져도
그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작은 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을 즐겁게 하고 있는 며느리를 보니 기특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지만 잘 헤쳐나가리라 생각하며.
***다음 날 아들이 전하는 말***
오셨을 때 며느리로서 잘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걱정하더라고,
전날 거절하기 어려운 자리에서 과음으로 탈이 났다나.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