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멋진 청년

눈님* 2021. 11. 25. 13:33

봄도 아닌데 바람이 났나 보다.

위드 코로나에 모범적으로 실천을 하기로 마음먹으니 만날 사람이 더 떠오른다.

오늘은 15~16년을 이웃해 살았던 사모님과 약속을 했다.

직장 선배의 부인으로 만났지만 자매 이상 정을 나누는 사이다.

현관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가면 옆집 뒤로 비스듬히 보이는 현관에서 사모님과 손짓으로 아침 인사를 하며 하루가 시작되었다.

별의별 얘기를 서슴없이 하지만 다섯 살 차이인데도 너무 큰 어른 같았다.

걱정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면 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 짜증을 내면 풀릴 때까지 들어주셨다.

많은 날을 돌담 계단이나 나무 아래서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끝없는 수다를 떨다가 12시를 넘기는 일도 허다했다. 남편이 늦다고 화내는 일이 없을 정도로 할 얘기가 많았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끔 관리실 아저씨가 순찰을 돌 때는 남편들의 불성실함이 드러날까 봐 몸을 숨기며 소리 죽여 웃기도 했다.

 

50년이 넘었을 것 같은 옛날 카페(풀하우스)에서 만났다.

고풍스러운 장식과 오래된 직원(총각에서 初老로 변했다) 옛날식 돈가스만으로도 편안함이 있다.

지금은 돈가스도 현대식으로 바뀌었고 샐러드바도 마련해서 조금의 변화를 주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편하게 식사와 담소를 하기에 좋은 곳이다.

전화로 얘기하는 것보다 얼굴을 마주하니 수다가 더 심해졌다. 

 

시내로 나온 김에 언니를 불러 휴대폰 가게에 들러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지 않으니 컴퓨터나 휴대폰이 잘못되면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어 대리점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약속 장소에 갔는데 언니는 도착하지 않고 남편이 보였다.

어떻게 여기서?

조금 있다가 언니가 왔는데 우연히 만났다고 하니 "너희 부부는 천생연분인가 보다"며 놀린다.

천생연분은 무슨, 맨날 얼굴 맞대고 사는데. 차라리 만나지 못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야 반갑지.

투덜거리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sk텔레콤 휴대폰 인증 가게를 안내해 주겠다며 앞장섰다.

 

휴대폰 가게가 난립해서 고객에게 불신을 주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 인증 가게가 생겼다고 하니 믿음이 간다.

직원과 상담을 하는데 젊은 총각이 너무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영업사원이라면 대체로 친절함은 기본이지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주스와 과자를 먹으며 아주 천천히 상담을 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상담 중에 언니는 목이 불편한지 소리를 내었는데 아차, 사탕이라도 넣어 올걸.

그런데 벌써 총각이 따뜻한 물을 들고 왔다.

어쩌면 이렇게 센스가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남의 불편함을 파악하고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 

거기에 행동으로 실천까지 하는 멋진 청년이다. 

총각은 결혼하면 틀림없이 사랑받는 남편이 될 거야.

진심으로 칭찬을 했더니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언니는 특별히 휴대폰 쓸 일이 많지 않다고 했지만 아니에요, 이제는 폰을 잘 활용해야 되는 시대라며 언제든지 오시면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올 수가 없을 때는 전화를 해도 된다며 꼼꼼히 폰 번호까지 챙겨주었다.

싼 요금이지만 무제한 데이터와 통신사 상관없이 무제한 통화가 되도록 설계했으니 마음 놓고 사용하시라는 친절함이 고맙기만 하다.

언니도 만족스러워한다.

좋은 곳 안내해 주고 끝까지 기다려준 남편도 고맙다.

일상생활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기쁨인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거울에 비친 얼굴

주름이 져도 꾸미지 않아도 활짝 웃으니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