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인과 운전

눈님* 2021. 10. 31. 18:50

'시월의 마지막 밤' 

인숙이와 나는 해마다 이날을 잊지 않고 만나든지 아니면 전화로도 기억한다.

특별하지도 않은 날인데 아마 이용의 노래를 즐겨 불렀기 때문이지 싶다.

오늘도 우린 만나기로 했다.

올해는 둘이가 아닌 정숙이도, 세 집이 남편과 함께.

정숙이네 시집이 청도기 때문에 청도에 관해서는 아는 게 많다.

진짜로 맛있는 추어탕 집을 소개했다. 원래 추어탕을 아주 좋아했는데 가을이니 더 구미가 당긴다.

깔끔하게 나온 찬에는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어릴 적 고향이 생각날 정도다.

산초를 넉넉하게 뿌리고 청양도 듬뿍 넣어서 찐 추어탕 맛에 반해 국물 하나 하얀 쌀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먹었다.

 

모노레일로 커피를 운반하도록 인테리어를 한 찻집을 소개했다.

요즘은 평범함을 거부하고 시설, 인테리어를 특이하게 한 모습으로 개업을 하면 입소문이 번져 아무리 외딴곳이라도 찾아간다.

저수지를 볼 수 있도록 언덕바지 중간에 위치한 찻집이 꽤 괜찮아 보인다.

건물 앞에 철길을 깔아 정겨움을 더했다.

어릴 때 철길에서 놀던 생각이 나서 철길에 발을 올려 균형을 잡으려고 했지만 몇 걸음 못 가고 비틀거려진다.

남편들이 오지를 않아 돌아보니 여러 사람이 주차장에 서 있었다.

사고가 났음을 직감했다.

인숙이 남편이 주차하면서 옆 차를 긁어버린 것이다.

믿기지가 않는다.

센스가 뒤에만 있는 게 아니고 옆에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실수를 했을까?

운전 기술, 매너, 교통 신호 철저히 지키며 안전 운전을 하기 때문에 항상 편했는데......

상대 차는 아주 조금 긁혀서 왁스로 닦으면 될 것 같고 인숙이네 차가 제법 길게 긁혔다.

우리 정서로는 속상하지만 그냥 사과받고 끝낼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궁금해서 남편에게 차 값을 물었더니 최소 1억에서 3억이라나. 그것도 SUV는 더 비싸다고.

맙소사!

새 차를 뽑은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고급 외제차(chevrolet)니까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당연히 보험 요구를 했고 보험 처리를 했다.

보험사에 전화를 할 때 인숙이 남편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보았다.

남매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는 어르신이란 호칭으로 깍듯이 예의를 차렸다.

 

우리 나이는 이제 어디를 가도 젊은이들의 눈에는 어르신으로 보이나 보다.

본인들은 아직은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 노인들은 행동 집중력 기억력 시력 청력 언어력 등 모든 게 쇠퇴해 가는 게 맞다.

더구나 운전은 위험하다. 아차 순간 생명과도 직결되니 더 깊이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아직은 운전에 자신이 있고 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곤란한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웬만한 불편함은 감수하고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노인 운전면허증 반납하면 일시금을 지불한다고 안내를 하는데 그건 별로 실효성이 없다.

반납하는 분들은 어차피 운전을 하지 않고 면허증만 소지하고 계셨던 분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운전을 하고 계시는 노인들이 운전을 하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인 방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오늘 이 사고로 차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내가 아쉽게 차를 없앤 이유가 설명이 다 된 것 같다.

 

사고만 없었다면 모처럼의 만남이 훨씬 더 길었고 좋았을 텐데.

차를 마시면서도 남편들은 휴대폰으로 야구 중계에 열심이었다. 집에 가서 프로야구나 보자며 일찍 헤어졌다.

아쉽게 야구도 삼성이 지고 KT가 1등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가게 되었다.

우울한 시월의 마지막 날.

ㅠㅠㅠ

 

 

인천대공원(단풍나무가 꽃송이처럼 너무 예뻐서 살짝 모셔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