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이 코로 들어가지는 않아요
가을인가?
하늘은 맑은데.
단풍을 볼 수가 있어야 가을을 눈으로 느낄 텐데 공원을 가도, 산으로, 수목원으로 가도 고운 단풍이 보이 지를 않는다.
가끔 붉은스럼, 누르스름하게 눈에 띄는 게 별로 반갑지 않다.
아파트 앞 터널을 이루던 벚나무도 빨간 잎으로 곱게 물들어야 하는데 잎이 떨어지고 남은 잎은 그냥 파랗다.
대구만 그런가?
오랜만에 언니와 시내에 나가보자고 했다.
쇼핑할 것은 없지만 꼭 마음에 드는 것 있으면 사고 아니면 아이쇼핑도 좋다..
교보문고에 가서 책 구경하는 것도 괜찮고.
지난번에는 안경을 갖고 가지를 않아서 대충 보기만 했다.
"언니야, 우리 나이에 서점에서 책 둘러보는 것만 해도 꽤 괜찮은 것 같다 그쟈? "
"그런가."
오늘은 모든 일에 언니가 선수(先手)를 두게 할 참이다.
언니에게 무엇이던 해결해 주는 게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나이 탓도 있지만 자꾸 소심해지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언니를 위해서 직접 부딪치게 하고 옆에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바꾸어야겠다.
신발을 볼 때, 실내에서 입을 옷을 살 때, 부엌 기구를 살 때도 언니 마음에 드는 디자인 색상을 고르라고 했다.
함께 나왔던 남편은 은행 볼 일을 마치고 만나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내가 잔소리를 해도 언니와 남편은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한다.
여기서도 언니가 계산을 하고 서빙까지 하도록 내버려두는 나쁜 동생 역을 자청했다.
저녁 시간은 아직 이르지만 식사 해결하고 가자는 남편.
언제부턴가 한 끼 식사 해결해 주는 것이 아내 사랑이라는 걸 알았는 것 같다.
몇 년 만에 갔는 식당인데 사장님이 알아보시고 반가워하셨다.
동태탕, 갈치 전문집이었는데 남편은 시원한 동태탕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가끔 들리는 곳이다.
깔끔한 밑반찬(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맛은 보통)
동태탕은 곤을 추가로 주문했다.
시원하고 깊은 맛에 밥은 1/5만 먹고 탕은 국물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서비스로 제주에서 낚시한 삼치와 우거지로 만든 찜을 주셨는데 우거지가 먹고 싶어도 꾹 참았다.
낚시 미끼를 생각하니 절대 젓가락이 가지를 않았다.
결혼 초에 남편에게 부탁했다.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은데 낚시는 절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난 세상에서 지렁이가 제일 징그럽고 무섭다고.
식당에서 난감했지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데 전기불이 갑자기 가버렸다.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식당의 방 안은 해가 짧으니 더 깜깜했다.
초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주위가 조금씩 희미하게 보인다.
어릴 때 초롱불 켜던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이런 민망할 때가 있나" 사장님은 속상해하셨다.
"어두워도 숟가락이 코로 들어가지는 않아요." 민망함을 들어드리고 한 말이다.
몇 숟가락 먹었지만 생선의 가시를 발라내는 일은 집에서나 밖에서나 내 몫이니까 불안하다.
조금 밝은 홀의 테이블로 옮겨 식사를 하는 중에 전기불이 켜졌다.
잠깐 놀라긴 했어도 싫지는 않았다.
불이 꺼졌을 때 화를 내고 불편한 얼굴을 했으면 지금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해하시는 사장님을 향해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추억이 될 겁니다."
저녁도 해결되었고 추억도 만들었고 쇼핑도 마음에 들었다.
단풍 구경보다 더 좋은 하루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