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변공원

눈님* 2021. 10. 6. 00:23

우울하다.

언니가 이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1년 동안 집을 비워두었고 얼마 전에는 가구까지 들여놓았는데......

부동산 법이 너무 복잡해서 자세히 잘 모르면 억울한 일이 생겨도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억지를 부리고 막 나가는 사람한테는 당할 재간이 없고 양보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양보가 아니고 그냥 당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부동산이 팔리지 않아서 전세금 반환을 못해주겠다는 임대인과 전세금의 일부라도 주면 먼저 나가겠다는 임차인 관계에서 한 푼도 받지 않고 집을 비워 줄 수는 없어 만기 날짜에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기 전 LH 공사에 알아보려고 했는데 창립기념일이라 쉬었고 10월 3일이 일요일이니 대체공휴일이라 또 하루가 미뤄졌다. 이런 연휴가 있으면 대체적인 업무는 다음 날에 아무 불이익 없이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이다.

이사를 하지 않고 날짜가 지나면 자동적으로 1년을 더 거주해야 한다니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러면 임차인은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해도 무조건 날짜에 집부터 비워주어야 법의 효력을 받는다는 이런 악법이 있나? 

답답해서 LH공사에 남편과 직접 가서 확인을 해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많은 민원으로 바쁜 건 아는데 속 시원한 답 얻지 못하고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보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예전에 살던 곳이 LH공사 바로 옆이고 자주 산책하던 저수지가 머잖은 곳에 있어서 마음도 정리할 겸 걸었다.

내 마음이 안정되어야 언니를 위로할 수가 있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햇살은 따가웠다.

모자도 양산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걸었다.

화가 난 가슴에 열기가 더해지는데 오히려 화가 차츰 풀리는 걸 느꼈다. 

녹조를 띄었지만 저수지에서 시원하게 솟아오르는 분수, 평풍처럼 둘러진 높고 낮은 산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잘 정리된 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난 구름이 있는 하늘을 더 좋아한다.)

수변공원이다.

근처 오래된 할머니 묵집에 들러서 묵밥을 먹었다.

남편은 묵을 너무 좋아해서 항상 이 집에 오고 싶어 했다.

 

10분 정도 더 깊이 들어가면 400년이 넘은 고목과 정자가 있다. 이곳은 내가 21년 전 즐겨 찾던 곳이다.

여기서 혼자 많이 울었다.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이 부을까 봐 흐르는 대로 그냥 두었다.

남이 볼까 차의 앞면을 산 쪽으로 세우고 산과 논을 보며 울다가 음악을 듣기도 하고 잠시 졸기도 하다가 집으로 갔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많이 울었는데 이제는 웃으며 옛이야기할 수 있다며 남편을 바라보니 특별한 표정이 없다.

괜히 아픈 기억을 얘기했나?

언니 일은 속이 상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계속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사진도 찍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안 되는 일은 빨리 포기하자.'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많이 자라 우거진 나무들, 아기자기 꾸며진 조형물들을 구경하며 물 위에 데크를 모양내어 만들어 놓은 다리를 걸으니 한결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자유롭게 노니는 큼직한 잉어들과 거북을 보는 것은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