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
한가롭던 나의 생활이 바빠졌다.
코로나 팬데믹 4차 유행으로 이동과 만남의 인원이 제한되고 찌는 무더위에 숨이 막히는 이때에.
15일 결혼식 하루 전에 부산에서 하루 보내기로 했다.
일찍이 예약한 기차 좌석은 딸과 손녀가 타고 오는 옆 좌석에 대구에서 탄 우리 부부가 앉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열차 안에서 만남은 또 다른 경험이고 반가움이다.
숙소는 해운대 조선비치 호텔에 예약되어 있었다.
해운대에서 제일 전망 좋은 곳에 위치했지만 지은 지 오래되어 새로 리모델링을 했는 것 같다.
제각각 방에서 짐을 정리하고 저녁 식사 전까지 바닷바람을 씌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의 해운대는 내가 기억하는 곳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국콘도가 있던 곳에는 해운대를 대표하는 엘시티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특혜 분양으로 말썽이 많았던 기억이 사라질 정도로 멋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의 전망 좋은 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멀리 보이는 달맞이 고개도 인위적인 개발이지만 산뜻해 보여서 좋다.
다른 때 같으면 모래사장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붐볐을 텐데 부산은 방역 4단계가 발효된 탓으로 한산했다.
소심한 가족들은 모래에 발을 들일 생각을 못하고 망설이는데 예비 신부가 용감하게 신발을 벗어 들고 모래를 밟았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신발을 벗었다.
싸르륵 밟히는 모래가 싫지는 않았다. 손녀는 익숙하게 모래집을 야무지게 짓고 있고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딸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 위에서 부드러움과 쏴한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래, 이 느낌!
젊은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달리며 즐거워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구나.
맑은 물, 크고 작은 파도에 밀려온 다시마가 신기해서 줏어들고 한 컷 찍고 다시 물에 던져주었다.
나도 모르게 해운대 엘레지 노래가 나왔다. 작은 소리로 3절까지 부르면서 가사를 음미하며 호텔 뒤쪽에 자리한 동백섬을 바라보았다.
백사장에서 동백섬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오고 또 가는 바닷물 타고 들려오는 지금도~~~~
갑자기 모래 위에 남편의 이름을 써보았다.
아래에는 내 이름도 썼다.
언제 보았는지 아들이 카메라를 들여댔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런 모습을 좋아한다.
큰 파도가 씻어가기 전에 빨리 자세를 취했다.
원래 계획은 해운대 맛집을 찾아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식당은 2명으로 제한을 하는 바람에 호텔 룸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메뉴판을 보던 남편이 쉽게 결정을 하질 못한다.
"아빠 가성비 따지지 마시고 시켜요."
아들의 말에 무언가 심상찮아 메뉴판을 보았더니 "엄마야 너무 비싸다."
이왕 마음먹었으니 좋은 날 기분 좋게 먹자. 이것도 경험이다.
늦어지는 사위를 기다릴 수 없어 신랑 신부가 될 아이들은 예식 할 호텔로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할 것이 많을 것이다.
늦게 도착한 사위는 아내와 맥주로 야경을 즐긴다고 하고 우리 부부는 '악마 판사' 드라마를 보고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침 일찍 미용실에 가야 된다며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질 않는다.
많은 생각들로 뒤척이다 일어나 커튼을 걷고 검은 밤바다와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는 것도 괜찮다.
높고 낮은 곳에서 반짝이는 불빛들, 해변 둑 가로등 불빛은 너무나 낭만적이어서 남편을 깨워서 걷고 싶은 걸 참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이다.
가끔 쌍쌍이 데이트를 하는 모습도 보이고 혼자서 산책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또 밖을 보니 멀리 달맞이 동산 위로 아침 해가 눈부시게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