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누이/동대구역 광장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는 말이 있다.
우리 세대가 살아오면서 듣고 보고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다행히도 나는 친정이나 시집 모두 올케와 시누이 사이가 정말 좋다.
이렇게 잘 지내는 이유는 본인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으로 있지만 시어머니의 처신도 많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결혼 초창기부터 며느리보다는 딸을 더 꾸중하시고 며느리를 감싸안는 현명한 시어머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처음 시집을 갔을 때 시누이는 세일러복에 양갈래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순수하고 착한 고등학생이었다.
손재주가 좋았는데 시화전에 어울리는 글씨와 삽화는 수준급이었다.
올케가 셋이나 있는데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한 일이 없었다. 시어머님 역시 어딜 가시나 며느리 자랑만 하셨다.
첫째 며느리는 이래서 좋고 둘째 며느리~~ 셋째는~~
별로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데 그러셨는 게 딸에게 영향이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내 딸이 아주 어릴 때 시누이랑 함께 놀이공원이나 쇼핑을 가면 엄마인 나는 차려입고 멋을 내었는데 시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조카를 업고 안고 다녔다. 머리에 꽂는 핀이나 예쁜 방울은 보이는 대로 사서 한 소쿠리가 되었다. 조카 머리를 사치스럽게 손질을 해주고 얼마나 많이 예쁜 했는지 모른다.
시누이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서 창원에 정착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친정 올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고 두 번째가 시누이 남편이라고 자랑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시누이는 결혼 전에 서점을 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결혼 후에도 전업주부로만 있지 않았다.
질녀가 디자이너로 있는 회사의 의류를 백화점에 매장을 내었다.
사교적이고 인간적인 시누이는 백화점 내에서 여성의류 판매 1~3위를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상술도 뛰어났다.
세일 기간이면 가끔 나도 친구들을 한 차로 태워가서 판매고를 올렸다.
한 번은 비가 많이 오는 날 세일 기간이라 친구들과 고모네 옷 사려 간다고 하니 남편은 잘 다녀오라고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비 오는 날 고속도로 운전은 위험하다며 싫은 소리를 했을 텐데 오히려 고마운 눈치다.
세일에 더 깎아주고 점심까지 사주어서 남는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고모는 고마워하고 나는 그러는 게 기뻤다.
또 한 번은 남편이랑 갔는데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사지 않았더니 남편이 마땅찮은 눈치를 주었다.
많이 깎아주어서 남는 것도 없는데 공연히 30여만 원 주고 살 필요가 있냐고 했더니 전체 판매금액이 많아야 백화점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장사할 수 있다고 해서 샀는 일도 있다.
하나뿐인 여동생을 애틋이 여기는 남편의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내가 가장 많이 간 지역이 창원이다.
갈 때마다 최고 좋은 음식점에 예약해서 극진한 대접과 진심으로 좋아해 주니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창원이라면 무조건 가자고 한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보지를 못했는데 놀러 오라고 몇 번이나 전화가 왔다.
내려오지 않으면 올라가겠다는 으름장도 놓는다.
코로나도 문제지만 더워서 움직이는 게 싫었는데 새로 옮긴 아파트 입주를 축하도 하고 바람 씌우는 기분으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바쁜 너희들은 그냥 있어라, 시간 많은 내가 갈게.'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카카오 택시가 편하지만 시간이 많아 전철을 이용했다.
에스컬레이터로 동대구역 광장에 올라서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돋보기로 얼굴 쳐다보며 주름 보고 깜짝깜짝 놀라듯 우리나라 곳곳은 날이 갈수록, 계절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어서 놀랐는데 이곳 광장도 그랬다.
동대구역이 새로 증축되었을 때는 주차장이나 큰 도로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불편했다. 이렇게 넓은 광장에 주차장도 없고 택시도 들어올 수 없고 뭐 하려 비워두냐고 불평을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구나! (기생충의 대사 한 부분 :아들은 계획이 있었구나)
컬라플 대구(COLORFUL DAEGU)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의 대형 로고를 비롯해 각종 조형물과 미니 정원, 분수, 쉼터가 어우러진 종합 공원은 너무 아름다웠다.
알록달록 색색의 새집이 있는 걸 보니 이곳은 새들도 사람들과 공존하는가 보다.
철 없이 일찍 핀 코스모스를 제일 먼저 카메라에 담았다.
인도에는 그늘막을 만들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물했다.
남편은 휴대폰으로 예약한 열차표가 화면에 뜨지를 않는 게 이상하다며 계속 화면을 만졌다.
소란 끝에 찾기는 했지만 나이 탓인지 무얼 해도 불안하다.
예매했을 때 자기는 나이에 비해 휴대폰 사용 너무 잘한다고 칭찬했는데 버벅거리며 당황할 때 짜증 내었던 게 미안해서 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으로 마중 나온 고모 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점심은 밖에서 먹고 새로 이사한 집으로 갔다.
군부대가 이전한 장소에 대단지 아파트(6500세대)를 지었는데 규모가 대단하다.
주위 낮은 산들과 비탈진 곳은 그대로 살려서 자연스럽게 조경을 했는데 앞으로는 이렇게 넓고 자연의 혜택을 받은 곳에 대단지를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실내는 인테리어 솜씨가 뛰어난 고모의 손길이 닿은 곳곳은 그냥 감동이다.
원목을 이용한 고전적인 멋과 최첨단의 가전 시스템,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갖춘 게 콘셉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현관에 들어서면 마스크를 걸 수 있는 걸개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
시누이는 센스쟁이!
35층에서 바라본 뷰는 말문이 막혔다.
"여기가 천국이다."
그동안 있었던 일과 앞으로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겁고 진지한 얘기지만 가볍게 많은 얘기를 했다.
훈석이 결혼식 진심으로 가고 싶지만 가족끼리 단출하게 한다니 어쩔 수가 없다고 서운해하시며 축의금을 주셨다.
아무리 고사를 해도 주시니 감사히 받았다. 오빠 용돈도 함께.
열차를 타고 오는데 시누이가 전화 왔다.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두고 갔냐고 소리를 높였다.
고모집에 없는 것 없으니 집에 어울리는 멋진 화분이나 사라고 했다.
우리는 당일치기나 짧은 여행이 체질에 맞다며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 탓이리라.
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