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치와 오리 한마리!

눈님* 2019. 12. 25. 13:52

질부야

잘 지내지?

많은 사람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서로에게 사랑을 나누는 성탄절이네.

어제 밤늦게 도착된 김치를 오늘 개봉하는 순간 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냥 눈물이 났어.

차곡히 쌓인 공간 위의 오리 한 마리......

고운 마음과 정성이 얼은 내 마음을 녹이고 오히려 따뜻해진 듯해.

사는 게 각박해져서 모두 불평불만이 판을 치는데 너희 부부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참 예뻐 보인다.

마음이 말을 하게 되고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복을 만들어가는 게 보여.

그 행복의 한 부분을 나에게 보내주니 난 그저 고마워서 너희 부부 건강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도하는 일 밖에 없네.

셋째 고모랑 김치 나누고 고모부랑 훈제 오리와 술을 한잔 하며 부산 얘기, 조카와 질부 자랑으로 연말을 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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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마음을 전하기가 어려워 처음으로 질부에게 카톡을 보냈다.

매년 보내주는 김치지만 정말 고맙고 미안해서 그만두라고 했는데 또 보내주었다.

6남매 막내로 태어나 세상에서 받을 사랑은 다 받았고 살아온 49년 동안은 모두가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23살 나이에 시집온 나에게 셋째 언니는 늘 김장을 해주었다. 언니가 어려워져 손이 모자란 후부터는 큰 언니가 보내주었다.

큰언니가 연세가 많으니 넷째 언니가 "이제부터는 내가 보내 줄게."

그런데 올케언니가 먼저 보내주었다. 된장 고추장도 함께.

올케 언니의 뒤를 이어 질부가 보내주고 있다. 물론 올케의 부탁이 있었겠지만 대를 이은 효부고 심성이 착하다.

언니들이야 부모님의 막내 사랑에 대한 의무감 비슷한 마음이 있을 수 있지만 질부는 또 한 촌수를 건너는데 더 정성을 들이니 미안함과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기 조차 어렵다.

 

내가 김치를 담가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아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김장을 해서 보내주는 일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연습을 해야 한다.

셋째 언니도 식당을 하지만 직접 김장을 해 보지는 않았는데 재료를 부지런히 사 오고 난 밤을 새워 배추 뒤적이며 간을 맞추고 정성을 들여 만든 김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맛이 있었다.

딸에게 보내주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처음이라며 팔아도 인기 있겠다고 했다.

한 번은 음식 솜씨 좋은 현숙이 아줌마가 오셔서 간을 맞추어 주어서 성공을 했다.

다음 해는 자신감이 생겨서 혼자 담갔다. 남편도 맛있다며 계속 먹으면서 양념을 버무렸고 내가 먹어도 맛이 있어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김치를 먹으니 아무런 맛도 없는 맹탕이었다.

너무 허무했다.

언니는 김장 김치는 짜야 되는데 싱거워서 그러니 위에 젓국을 부어 놓으면 된다고 했다.

실망감에 화도 났지만 시키는 대로 젓국을 부어놓고 몇 년 동안 손도 대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고 김치 냉장고에 보관되었다.

우리 집 음식이 대체로 싱거우니 남편의 간 보기도 빗나갔고 나의 경험 부족도 원인이었다.

그런데 반전!

몇 년 지나 찌개용으로 사용했더니 세상에 없는 하나뿐인 김치찌개가 되었다.

( "날 왜 그동안 모른 척했어요. 저의 잘 숙성된 맛을 보여드릴게요." 기다린 듯하다.)

멸치젓 생새우 생갈치 청각 등의 맛이 깊이 밴 김치는 아직도 아삭하고 잘 숙성되어 싱거운 장아찌가 되었다.

가끔 씻어서 먹어도 맛있고 국물은 찌개에 넣으면 다른 양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오묘한 깊은 맛을 낸다.

올여름에 마지막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알뜰히 잘 먹었다.

가끔 찌개를 할 때나 라면을 끓일 때면 그 깊은 김치 국물이 생각난다.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몇 년 동안 무관심의 미안함이 있다.

이런저런 김치에 관한 사연이 있지만 둘이서 조금 먹고 즉석 겉절이를 선호한 탓에 김장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김치를 담아주니 68세가 되었는데도 김치 담는 솜씨가 늘지 않으니 이젠 그만하라고 해도 조카와 질부는 괜찮다고 하니 난감하지만 고맙고 행복하다. 

나를 울린 김치 포장 위에 앉은 훈제오리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