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세월이 약이랍니다~~

눈님* 2011. 2. 25. 01:00

토끼야 토끼야 산속에 토끼야~

겨울이 오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흰 눈이 내리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우리가 동요를 부를 때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일 때에 저절로 나오게 된다.

 

"여기 좀 나와 보세요."

컴퓨터를 보고 있던 남편이 "무슨 일인데?" 하면서 부엌으로 나왔다.

식탁 위에 놓인 빵, 과자, 과일, 건강식품이 소복이 있는 걸 가리켰다.

"밖은 너무 춥다고 난리가 났는데 우리 집은 햇볕이 깊이 잘 들고 조금만 보일러를 돌려도 따뜻해서 좋은데

이렇게 먹을 것까지 준비가 되어 있으니 갑자기 산토끼 노래가 나와요.

아! 너무 좋다."

"그럼, 행복도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렸지."

 

며칠 전 추운 날 남편과 나눈 대화다.

진심으로 이런 마음이 들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을 애써 외면하며 돌아왔다.

2000년 10월 추석이 지난 며칠 후였다. 

친구들과 경주의 현대호텔에서 패션쇼를 보고 늘씬한 모델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장거리 운전을 한 후의 다음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은 얼마나 행복했었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리와 크라크케이블이 화해를 하고 하룻밤을 새운 아침의 행복한 여인의 모습과 같았으리라.

행복의 순간도 잠시 엄청난 사건은 터져버렸다.

몇십 년 알고 지낸 선배의 권유로 거금을 투자했는데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학교 선배고 직장 선배인 그분은 오래전부터 투자를 하고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고 믿었던 분이니 전혀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도 당하신 거다.

은행 월급 평생을 모아도 되지 않을 돈이니 타격은 심각했다. 

절망과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남편을 위로하고 힘을 내어야 했다.

지금껏 무조건 받기만 했던 사랑과 마음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모두 누리며 살아온 49년.

그러나 하나하나 버리고 놓아야만 했던 10년 세월이었다.

희망을 갖기도, 버리기도 했다.

원래 잘 울었지만 더 많이 울었다.

절대 남을 부러워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조그마한 것도 부러웠다.

사람 욕심이 많은 나로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는 게 어렵고 가슴이 아팠다.

남이 몰라 주어도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자신만의 심성이 황폐해 가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사랑으로 키운 아들 딸이 부모를 원망하거나 멀어질까 그게 가장 두려웠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자식이 부모를 싫어한다면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남편은 떨어져 있던 아이들에게 비밀로 해라. 말하면 죽어버린다고 했지만 나는 반대였다.

대학생 정도면 가정의 어려움도 알리고 함께 노력해야 된다며 알렸다.

걱정은 되었다.

그런데 사는 게 참 재미있는 일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더라는 것이다.

지금껏 어리게만 보았는데 오히려 부모 걱정이 대단하다.

아빠 원망은커녕 아들은 매일 아빠께 전화하고 딸은 엄마에게 전화가 불이 났다.

부모가 원망스럽지 않으냐고 물으니 지금껏 너무 편하게 공부시켜 주고 잘 키워주셨다며 예쁜 말만 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노후 준비로 마련해 두었던 시내의 노른자위에 위치한 상가 3곳을 모두 팔아 정리는 되었다.

아이들의 진로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다행히 식구들이 물욕 많지를 않다 보니 현실에 잘 적응했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배우자를 만날 때의 조건은

사람이 최우선이란 말을 많이 했는데 사위가 딱 마음에 든다.

우리 식구들의 여리고 어리바리한 성격을 2세들에게는 물러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강하고 똑똑하고 똑 부러져서 어디를 함께 가도 무엇을 해도 걱정이 없다.

꿈은 이루어졌다.

이번 구정에는 모두 모여 완전한 가족 구성이 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로부터 딱 10년 3개월 만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예전의 나로 돌아온 느낌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가끔은 억지로 행복해지려고 노력도 하고 또는 행복한 척했다.

그런데 이제는 저절로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이 포만감!

세월이 약이겠지요~~~

세월이 약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