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팅
해가 바뀌었다.
2달 동안 시간이 가는지 세월이 가는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바빴다.
몸은 힘이 들었어도 많이 활발해지고 삶의 현장에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어려움에 처했던 언니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위에서 이렇게 의좋은 자매는 처음 본다는 칭찬에 뿌듯하고 막내로서 항상 사랑만 받았는데 조금은 갚게 되어 너무 기쁘다.
바쁘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니 조금은 답답해서 외출을 하려는데...
울리는 폰 소리~
언제나 넉넉한 베풂을 좋아하는 가은이네 아빠의 전화다.
"우리 오늘 번개팅하자."
번개팅이란 말을 넷상의 카페에서나 쓰는 말인 줄 알았다.~ 폭소
거짓말처럼 모두 찬성이다.
예전 같으면 갑작스러운 약속은 꼭 누군가 빠지게 되는데.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니 모든 활동이 축소되고 스스로 왜소해지니 부름이 반가운 모양이다.
구도(舊道)를 따라가면 가창골의 우륵에는 음식 마을이 예전부터 있었다.
도로가 8차선으로 확장 개통 되고는 멋진 새로운 명소들이 많이 생겼다.
음식점도 대형으로 기업형이 있고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별의별 아이템이 즐비하다.
한국 음식은 종류가 아주 많지만 요리법도 대단한 손놀림과 정성이 들어야 제 맛이 나는데 요즈음은 더욱 발전되고 다양하다.
하나의 요리도 어른과 아이, 간이나 매운 정도도 차이를 두고 글로벌 시대에 맞게 외국인의 기호에도 신경을 쓴다.
미식가들의 골라 먹는 재미를 한층 더해주고 일상 생활화 되니 외식도 당당히 문화의 자리에 속하는가 보다.
솔을 숙성시켜 닭이나 돼지요리에 비법으로 사용한다는 닭찜과 옥돌 숯불 돼지갈비는 생각보다 훨씬 좋은 맛으로
다시 찾아가고 싶은 집에 등록해 놓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갑자기 누군가 벽에 걸린 액자의 글씨를 물었다.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글자여서 제 마다 나름대로 풀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주인을 불러 물었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예술가들은 쉽게 하면 될 텐데 꼭 어렵게 쓴다.
무슨 고집인지 모르겠다."라고 하면서 우리의 무식을 감싸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顔
好 心
德
갑골문자의 원형에 양각문자로 쓰였으니 우리가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국전에 낼 때에는 갑골문자로 양각문자를 쓰는 게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귀띔해 주면서
좋은 얼굴을 가진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좋은 마음을 갖는 게 더 좋고 그것보다는
좋은 덕을 쌓는 게 가장 좋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헤어질 땐 조만간 다시 만나자고 약속해 놓고 먼저 연락하는 일이 그의 없으니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
반성의 기회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매일 반성만 하는 것도 문제다.
갑작스러운 번개팅으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 좋은 글귀를 배웠으니
오늘은 새해 들어서 가장 보람 있고 행복했던 날이라 남기고 싶어서 긁적여 본다.
양각 (陽刻) ; 조각에서, 그림이나 글자를 도드라지게 새김